하긴, 그것도 잘 어울리긴 하겠다.
잘못 들은 게 분명했다. 아니면 시인이 되고 싶다는 말이 눈에 띄는 공백을 낼 만큼 허무맹랑하던가. 그는 잠시 있다 말을 이었다. 하긴 그러면 마음대로 이것저것 다 해볼 수 있겠지,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 그리고 또 잠깐의 공백이 이어지고.
능력, 이라는 말로 유추하건대 아마도 그가 '시인'이라는 말을 '신'이라고 들었으리라 짐작했지만 그 오류를 정정하지는 않았다. 나는 가끔 그런다. 정정하지 않는다. 잘못 주문된 메뉴나 오해로 얽힌 관계나 잘못 전해진 의도를 되돌리지 않는다. 꺾인 무릎을 꺾인 대로 둔다. 쉼표대신 찍힌 마침표를 그대로 보낸다. 잘못 들어선 길을 끝까지 걷는다. 일종의 게으른 운명론자의 흥미 같은 이유 따위로.
어떤 의미에서는 '시인'도 '신'의 한 부류에 속한다고 사월의 시작법에서 시인은 말했다. 자신의 글 속에서 누군가를 살리고 해방시키고 두 번 죽일 수도 있으니 시인은 그 안의 신에 가깝다고. 소설이든 시든 쓰는 자는 신이 되는가를 생각했다. 욕망과 오만이 나를 쓰게 만드는 가에 대해서도. 무엇이 나를 쓰게 하나. 무엇이 나를 속절없이 밀려드는 것들 앞에 멈춰 세우나. 언젠가의 글에 어떤 날은 글이 생리처럼 터진다고 썼다. 지금은 몸을 비집고 나오는 것들을 꺼낸다는 감각. 나오려 안달 난 것들을 쥐고 비틀어 빼낸다는 감각에 가깝다. 신이 된다니, 어림도 없지.
그의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라는 말을 떠올리며 '하지만 그럴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는 것도 능력이지',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깔깔 웃었다. 허둥대는 엉성한 신이 된 내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물을 조금 부어야지 하다가 콸콸 쏟아버려 바다를 만들어버리는, 꽤나 절망적인 신이 된 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이것저것 해보다가 에라이 모르겠다 드러누워 잠만 자는 저 혼자 속 편한 신을 구체적으로 그려보면서. 내가 생각해도 나 같은 신은 사절인데? 짐짓 심각해하면서.
시작법詩作法, 이라고 적으며 시작始作하는 방법이라고 해석했다. 가까이 들여다보고 오래 보고 찰나를 쥐고 흔드는 일을 시작하는 방법. 그게 시를 쓰는 방법이라고. 문득 이성복 시인의 '시는 힘없고 초라한 것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거예요*'라는 시론이 떠올랐다. 쓰는 마음이 이렇다면 신이어도 되지 않을까. 힘없고 초라한 모든 것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려 애쓰는 신이라면, 찬란한 전능의 이름을 부여해도 좋지 않을까. 같은 책에 시인은 '시는 알고 쓰는 게 아니라, 쓰는 가운데 알게 되는 거예요**'라고도 했다. 줄곧 나는 그랬던 것 같다. 내 안을 알기 위해 쓰고, 바깥을 알기 위해 쓰고 뭐든 더 알아가기 위해. 역시 나는 신은커녕 신의 비서도 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못되더라도, 시인은 되고 싶다. 무수한 오류들을 구태여 정정하지 않는 괴팍한 성정의 시인이겠지만 그래도 신은 아니니 그 정도 결함은 있어도 되지 않겠냐고 우겨본다. 버텨본다.
시인이 되고 싶어,
그 말은 내년에 뭘 하고 싶냐는 말에 대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하니 시인은 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 아닌가. 시인으로 살고 싶어, 그러니 그것이 그의 말에 대한 내 진짜 대답일 것이다. 물론 또 이 말을 다시 전하지는 않겠지만.
* 이성복 시론 <무한화서> 중에서, 문학과 지성사
** 위와 같은 책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