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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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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Jul 11. 2020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지

191107





젖이 나오지 않았다.

으레 엄마가 되면 아기를 먹일 젖쯤이야 쉬이 나올 거라 생각했건만 천만에 만만에 콩떡이다.

노란빛의 초유를 먹이고 나니, 아니 애초에 초유부터 생각했던 것만큼 나오지 않았다. 어떤 엄마는 한번 유축하면 160ml 두통도 거뜬히 나오던데 내 것은 고작해야 40-60ml를 왔다 갔다 한다. 배가 고파 고개를 사정없이 도리도리 하는 찰떡이를 두고 가슴을 쥐어짜서라도 나오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워낙 허약한 체질이라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가, 왜 자신의 배에서 나온 아가를 제대로 먹이지 못하나 속상한 마음은 말로 못한다. 심지어 조리원에서 돌아온 집에서의 모유 양은 점점 눈에 띄게 줄어 방울을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포기하면 편하다 했던가. 배가 고파 우는 찰떡이에게 주던 감질나는 애달픔을 끊기로 했다.

 


모유를 끊고도 젖을 물리긴 했다. 극미량의 젖이 나오기도 하거니와 아가가 심적 편안함을 느끼지 않을까 해서다. 으앙 우는 찰떡이에게 젖을 물리면 작은 요술처럼 뚝, 울음이 그치기도 해서 찹쌀떡 군은 "그것 참 나는 가질 수 없는 부러운 무기다."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요술도 늘 통하는 건 아니었고 최근 들어선 젖을 잘 물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참에 임신 때부터 생겨 여러모로 날 괴롭히던 피부 트러블이나 고쳐볼까 하는 마음으로 피부과에 다녀왔다. 피로와 호르몬으로 생긴 '주사'라는 피부염이었다. 스테로이드 성분의 약을 처방받았기에 이젠 아예 젖을 물리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줄 수 있는 걸 못 준다고 생각해서 일까, 너무 괴로웠다. 내 살 냄새를 맡으며 얼굴을 파묻고 젖을 찾는 아가를 보며 스스로를 미워했다.

그까짓 피부가 뭐라고, 이런 붉은 얼굴로 살면 어떻다고 아가의 것을 뺏나(이미 내 젖꼭지의 소유는 내가 아니다). 주위에선 어차피 모유를 줄 게 아니면 지금부터 공갈젖꼭지를 물리는 게 낫다고 하지만 얼굴이 새빨갛게 되도록 우는 아가를 보면 '내가 미친년이지.'하고 탓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애초에 피부과에 간 게 잘못이었나. 하지만 피부염 때문에 사진을 찍거나 거울을 보는 것조차 혐오하게 되었는걸. 그래도 얼굴로 먹고사는 것도 아니고 엉망이면 어때, 아가가 더 중요하지. 아니야. 지금 엄마 젖꼭지를 끊지 않으면 나중은 더 힘들게 된다고 했어.  

머릿속 내 자아는 둘로 나누어져 끝도 없는 토론을 했다. 내가 잘했네, 내가 못했네, 답도 없고 결론도 없는 싸움이었다. 이미 약을 세 번 정도 먹은 후라 당장에 약을 안 먹는다고 해도 약효가 빠져야 하는 2주는 쉬고 물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온갖 생각을 해도 결국 최소 2주는 물릴 수 없다. 그렇다면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은 아기의 '빠는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공갈젖꼭지를 물리는 것이다. 바꿀 수 없는 어제를 곱씹지만 말고 찰떡이를 위해 할 수 있는 당장의 오늘을 생각하자.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는 도돌이 문장이 어떻게 할까라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아가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리면 퉤, 다시 물리면 으-앙을 반복하다 조물조물 장난감처럼 갖고 놀게 했다. 팬터마임을 하듯 내가 빠는 시늉까지 했다. 익숙해지길 열렬히 바라며 이틀이 지났다.

결국 오늘은 별 큰 저항 없이 공갈젖꼭지, 일명 쪽쪽이를 물었고 방긋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찰떡이는 입을 크게 벌리고 웃기 때문에 그때마다 쪽쪽이는 빠졌지만 다시 집어주는 게 뭐 대수랴. '찰떡아, 고마워.' 몇 번이나 아가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어찌 보면 찰떡이를 임신하고 생긴 피부염을 치료해보겠다고 한 결과가 자책으로 이어졌다.

그게 엄마의 마음일까. 너로 인한 모든 것은 결국 나로 돌아온다.


이 일로 며칠을 괴로워하는 날 두고 동네 친구가 말했다.


"언니, 근데 젖이 안 나오는 것보다 쪽쪽이 대용으로 못쓰는 게 더 미안해? 젖이 안 나오는 게 더 미안한 거 아닌가?"

"안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건데 이건 내 선택으로 못하는 거니까 그래."

"미안한 마음 드는 건 이해하지만 앞으로 단단해져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놓을 건 놓아야 해."


단단해져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박혔다. 내가 가진 자그만 등껍질로 지켜야 할 사람은 이제 나 혼자가 아니다. 쏟아지는 비를 가려야 할 사람은 내 한 몸이 아니다. 동그마한 고개를 빼꼼 내미는 아가가 바로 내 곁에 있다. 여전히 말랑하고 연약한 찰떡이를 위해 내가 더 단단해지고 커져야 한다.

난 혼자가 아니다.



아, 그나저나 피부는 어떻게 되었냐고?

먹다 끊은 약 때문인지 여전히 낮은 면역력 때문인지 미동도 없이 제자리다. 뭐, 이것 또한 나을 때 되면 낫겠지 하고 놓는 중이다.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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