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달리던 날이었다
운동화 밑창으로 물은 새어들고 하염없이 물은 새어들고
절뚝이며 걷는 너를 뒤에 두고 돌아보지 않던
해가 물에 잠기듯 나는 갈 거야
너의 입으로 말들이 떨어지고
나는 네게로 달려가 떨어지는 말들을 받아먹었다
입에서 입으로
벌어지지 않은 미래는 아직 우리의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 우리가 있었으면 좋겠어
원하지 않더라도
네가,
불어 튼 발을 씻고 흘러내린 옷을 추슬러 살아갔으면
네 몫의 불행을 알뜰히 살아냈으면
나는 너의 불행을 먹고 자라겠지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네가 좋아서
함부로 웃고 함부로 달리며
가만히 물에 잠기는 네 주위를 맴돌아
밀어드는 물을 밀어드는 만큼 마시기도 하면서
그러나 거기에는 불과 행이 있다
불행에는 불과 행이, 그래서 언젠가는 행이
어쩌면 그건 오래 지나서야 너를 찾아가겠지만
그 보다 더 오래 뒤에야 나를 찾아오겠지만
머리채를 뜯기더라도 울음을 삼켜 보자
미래에 있는 우리를 지켜보면서
불을 뗀 행을 기어코 끌어안은 우리의 등을 쓸어보리라 다짐하면서
살자고 일단 살아보자고
함부로 네 주위를 달리던
함부로 매달리던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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