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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 혼합

by 윤신


투명 필름 세 장에 빛을 비춘다

빨강 파랑 초록


색을 한번 모아볼까요

선생님이 앞에서 시범을 보이는 사이

필름을 얼굴에 갖다 대고 빛을 벽에 비추고

옆에 있는 아이에게 손장난 하느라

아이들은 바쁘다


어른만 바쁜 줄 알지

요새 아이들은 더 바빠


알아가야 할 목록들이 한 달 영수증보다 긴

우리의 희망 미래 꿈

사실 내 희망과 미래 꿈은 아이들에게 없겠지만


색을 모으면 어두워질 것 같죠?

자, 이제는 한번 거기에 빛을 대 보는 거예요


작은 손들이 미니 랜턴을 하나씩 들고

빨강 파랑 초록이 모인 원 안에 빛을 밝히면

어두운 교실 안

빛이 여러 겹의 셀로판지 필름을 지나


희게

색의 힘을 받아 격렬하도록 희게


이게 마음이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하나둘씩 모이는 각기 다른 색의 마음이라고

함부로 모여 빛을 발하는

원기옥 같은


원기옥은 만화의 일

두 손을 하늘로 뻗어 온갖 생명의 기운을 나눠 받는 일이지만

그게 꼭 만화에서만은 아니다


자신의 건강*을 나눠주는 게

투명한 기운을 나눠주는 게

그래서 희고 흰 빛을 꾸역꾸역 만들어 누구에겐들 알려주는 게


아이들은 기억할까

자신이 쏘아 내린 빛이

빨강 파랑 초록 겹겹의 마음을 더해

환한 빛을 이끌어 낸 것


부디 너희들은 그렇게 살아주겠니,

어른들의 간곡한 부탁처럼 들리는 건 나의 지나친 생각이지만


색이 색을 업고 지면을 눈부시게 빛내는

아연한 아이들의 눈빛만으로 충분하지


하나를 알아가는 하나의 환함으로


이런 걸 가산 혼합이라고 해요

이제 다른 수업 시간으로 옮겨 갈까요


우르르 아이들은 교실을 이동한다

랜턴과 필름을 정리하는 것은 어른들의 몫





*원기元気에는'건강'이라는 뜻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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