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건 순간의 일
이것 봐, 호두 잎은
문지르고 문지르다 보면
싱그러운 풀 냄새가 난다
한마디에도 달려오던 손들
걸음들
이미 죽어버린 벌레들
여기 탁자 하나, 그곳의 유리 접시 하나
차곡히 쌓아 올린 작은 성은
언제 무너졌는지도 모르게
모래 사장을 밟으면 자주
발바닥이 붉게 물들었지
토마토 마리네이드를 먹으면서 떠올리는, 덜 익은
생과 生果의 시간
베란다에서
볕에 나를 바짝 말리던
눈코입이 사라지도록 문지르던
사랑하는 엄마
당신을 생각하면 갓 짜서 신선한
피 맛이 나
밀려드는 물 안으로 천천히 맨 발의
당신이 숨의 몫을 넘어 걸으면
생활과
구두 굽에 달라붙은 피로는
얼마나 간단히 어두운 물 아래로 던져 버릴 수 있는지
그 가벼움이 당신은
얼마나 우스웠던지
여름 내내 물 앞을 오가며
그것들이
간단히 버릴 수 있는 것이라면
언제든 버릴 수 있을 것
다음 계절까지
다음 여름까지
그렇게 무너진 몸을 일으켜 세우던 건
당신을 살게 하고 나를 키워낸 체념
기억해 엄마?
생의 냄새가 진동하던
여름의 무해한 악의와
작은 짐승처럼 당신을
따라가던 붉은 자국이 건넨
호두 이파리
문지르고 문지르면
퍼지는
그 풀내음에
지겨워 죽겠어, 당신이 웃던
끝이 보이지도 않던
토마토의 밭
어린 손가락의 수만큼 쥐고
흔들던
찢어진 호두의 잎 잎 잎
그 시퍼런 이파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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