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없는 바다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검은 물 검은 물 검은 검은 물 검은
물 검고 검은 물 물 검은 검은 물 검은 물
검은 물 물 물 검은 검은 검은 물 검은
소리도 빛도 없이 검은
물에 잠긴 시간이
수면 바깥의 시간보다 길다
시커먼 눈동자가 달라붙은 이야기
축축한 몸을 떨쳐내고 나와도
거기에는 오직
검은 페이지 검은 식탁보 검은 엄마
검은 시계의 혀 검은 성기 검은 침묵
턱 아래에 차오르던 검은 몸의 역사
천천히 숨통을 조이던 그것이
히죽 -
너는 폐활량이 좋구나
이대로 더 견뎌보겠니
모로 돌아누운 몸
던져도 돌아오지 않는 공
움켜쥔 머리칼
침잠하는 어둠에도 기어이 찾아오는 겹겹의 얼굴들을 잘라
하나
둘
셋
검은 물살에 던질 즈음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리 와
부르던 것이
어린 내 뺨을 쓰다듬던 것이
저 물이었나
내가 던진 얼굴이었나
빠진 적도 없는 시커먼 물에
소리도 없이 빛도 없이
있는지도 모르던 것이
젖은 손으로 갈비뼈 사이를 매만지면
우르르 쏟아지던
예쁜 내장을
하나씩 주워 씻어 제자리에 두던
검은 손가락
시시로
동공으로 흘러나오던 검은 눈물을
다시 물이
검은 물이 집어삼키면
그 검은 것을 검고 사특한 것을
끝의 끝까지
미신처럼 붙들고만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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