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셜 A

by 윤신



A에게 며칠 전 슈퍼에 들리듯 집에 들어온 강도에 대해 말했다. 닫힌 문도 문이라고 열고 들어오는 파렴치한 남자의 몸을 떠올리면 어김없이 등에 살갗이 오른다고. 이 주 내내 불을 켠 채로 잠들었어야만, 그저 눈을 감고 시간 속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고. 가만히 듣던 A는 인해에게 피곤하겠네, 라고 했다. 그리고 침묵, 또 침묵. 인해는 이제부터 해서 달라질 것 없는 말은 하지 않는 게 낫겠다고 여겼다.


A에게 아내가 있는 게 A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A는 자주 미안하다고 했다. 인해는 속으로 대답했다. 우리는 불행을 나누지 못하는 사람들이야. 나의 불행은 너에게 그 어떤 해도 끼치지 못해. 나의 불행이 나를 죽이려는 동안에도 너는 그것을 알지 못해.


미리 사둔 버터 레몬빛 스웨터와 치노팬츠를 입고 있던 오후, A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아이가 아파서 오늘은 안 되겠다. 다음 주에 보자, 사랑해. 문장은 부드럽고 간단했지만 인해는 그 문장과 현실 사이에 흩어진 불행처럼 각각 떨어진 사랑의 형태를 파헤쳤다. 그의 것 나의 것 그의 아내의 것 그의 아이의 것 겹치고 겹치지 않는 타원형의 벤다이어그램. 인해는 어느 일본 감독이 피가 섞이지 않은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영화로 찍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불완전하고 기형적인. 가족이 그렇다면 사랑도 그럴 것.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오랜만에 그 감독의 영화를 보기로 했다. 사랑처럼 다양한 가족의 여러 모양을 잘근잘근 씹어보기로.


긴 크레딧이 올라가기까지, 완벽한 타인이 가족이라는 괄호 안에 몸을 비집어 밀어 넣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다시 살갗이 일었다. 인해는 남은 맥주를 목으로 넘기며 웃었다. 분명 웃고 있다고,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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