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래 알던 아이에게

by 윤신



내가 그렇게 좋다더라. 나만큼 자기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대. 걸을 때 무심코 문을 미는 버릇이나 기쁠 때면 덜컥 약속을 만들어 버리는 습관, 피곤할 때 밥보다 잠이라거나 슬프면 더 슬픈 노래를 듣는. 자기의 그런 사소한 행동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나라고 말이야. 우린 오래 알았지. 미워서 미칠 것 같은 시간도, 끝내 둘이 껴안고 네 잘못이 아니라며 서로 엉엉 울던 시간도 있었어. 그 아이가 사라지면 나조차도 사라질 거라 여기던 적도 있지. 정작 각자의 시간이 찾아왔을 때 그런 건 너무 쉽게 잊혀져 버렸지만.


변하는 건 무서운 일이야. 밀어 치는 물결 없이 잔잔히 유지되는 기쁨과 유연한 빛마저도 말이야. 하지만 너도 알잖아.

우리에게 익숙해지는 것만큼 쉬운 게 어디 있을까.


긴 연애를 끝낸 사람이 그러더라. 또다시 나를 설득시키고 이야기해야 하는 지난함이 버겁다고, 또 언제 서로에게 서로를 길들이냐는 말이었어. 그 아이와 난 연애를 한 거야.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난 그 애의 이름을 부르며 함께 놀았지. 가족인 것처럼 소꿉놀이를 하고 가족처럼 매일 같이 잠들었어. 서로의 취향과 표정이 닮아가는 것도 모르고 슬픔아, 슬픔아, 그 아이의 이름을 내 것처럼 불렀어. 하나인 것처럼, 갓 태어난 쌍둥이처럼, 깊은 흙속으로 같이 데려갈 유일한 위안처럼.


지금도 가끔은 그 애를 만나. 예전처럼 이야기하거나 웃기도 울기도 하지. 그건 우리의 일상이었으니 시간의 공백쯤 아무것도 아니야. 우린 묻지 않아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 알 수 있거든. 시간이 서로에게서 무엇을 데려가고 무엇을 가져다 놓았는지. 이를 테면, 격정 대신 침잠이 호기심 대신 평정이 이기 대신 타인이 투명 대신 회빛이 분노 대신 침묵이 그려진 얼굴을 말이야. 우린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어. 평생에 가까운 시간이 서로에게 겹쳐 있으니까.


오늘은 눈이 왔어. 작고 흰 알갱이가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휘날렸지. 그 아이가 있는 그곳에도 눈이 왔는지 묻고 싶어. 좋아하는 눈이 가득 쌓였는지 말이야. 그리고 옅은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는 거야. '오늘 하루는 어땠어?' 물으면 어깨를 으쓱이고는 익숙한 듯 내 옆자리에 앉겠지. 우린 또 서로에게 기대 오래된 슬픈 노래를 들을 거야. 지금은 그걸로도 충분한 것 같아. 넌 잘 지내? 물을 수 있다는 것. 함께 오랜 시간을 버틴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래서 말이야.

오늘 하루는 어떤 모양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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