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루는 선들

by 윤신



움직이는 시늉을 한다. 줄기를 뻗는 식물처럼 가만히 있는 듯 보여도 그 속에는 떨림과 버팀이 존재한다. 머리서기를 한 상태에서 파드마사나(결가부좌)를 하려 하지만 다리가 쉽게 교차되지 않는다. 수직으로 거꾸로 선 상태로 몇 번 더 애쓰는 동안, 이제 몸을 후굴해 시르사파다로 연결하라는 선생님의 말이 들린다. 가능한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저만의 속도를 찾으라는 의미가 분명할 저 문장에서부터 나의 고뇌는 시작된다. 이미 나는 나의 할 수 있는 만큼을 다 써버린 게 아닐까. 지금 이렇게 어려운 일이 다음 주라고, 다다음주라고 쉬워질까. 여기서 몸을 뒤로 휘어 발바닥으로 바닥에 안착하라니. 열릴 것 같던 몸의 문이 전부 닫혀버린 기분이 든다. 발목이 잘린 가지처럼 서늘하다.


이대로 충분하다는 안도와 더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좌절은 모두 '변함없는 상태', 같은 자리에서 나온다. 나아가지도 떨어지지도 않는 그대로의 상태. 그럼에도 버티는 시늉을 한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만든다. 수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늦은 밤, 온라인 ‘만다라 내면 일기’ 모임에 참가하기 위해 컴퓨터를 열었다. 요가 수련이 혼란스러워, 요가고 인생이고 이대로 괜찮을까 싶은 마음에 거의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지시에 따라 빈 손을 움직였다. 몸을 중심에 두고 팔과 손끝으로 나선과 긴 곡선을 그렸다. 중심을 믿고 나를 맡기라는 말에 손바닥으로 몸을 톡톡, 토닥토닥 쓸어안았다. '자유롭게, 지금 손이 그린 느낌을 유지하며 그려보세요.' 캔버스 위에 색연필로 크게 회전하는 원을 그렸다. 선은 바깥으로 뻗었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왔고, 다시 바깥으로 번졌다. 작은 여백을 스치며 원은 겹쳐지고 겹쳐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시작의 원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감싸는 하나의 흐름이 만들어졌다.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던 손이 멈칫했다. 제멋대로 그린 선들이 어느새 하나의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서로 다른 선들이 이어져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느낌. 지금의 일들과 사람들, 지난 방황들까지 엮여 하나의 나를 이루고 있다는 감각.

제멋대로인 색마저 나구나. 흩어져 있던 작은 원들까지도 나를 만들고 있었다.


목 뒤에서부터 어깨까지. 허벅지에서 발끝까지. 턱 끝에서 가슴까지. 옆구리에서 골반 옆까지. 숨을 불어넣는다. 숨이 거기에 있다고 믿는다. 나의 선이 나선으로 뻗어나간다고 느낀다. 눈앞에 보이는 변화는 없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며칠 전 '눈동자 뒤에는 긴 뿌리가 있다'는 짧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해부학적으로 봤을 때 눈의 뿌리가 머리 뒤쪽에 더 가깝다는 글이었다. 눈으로 담은 색과 빛이 후두골을 지나 목 뒤로, 어깨로, 끝내는 발끝까지 닿는 상상을 한다. 보이는 영역 바깥의 일을 상상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 어쩌면 그것이 진짜 믿음일지도 모른다. 줄기 식물은 정지한 듯 보이지만 줄기 내부의 세포는 계속 분열하고 성장한다. 멈춘 듯 보여도 나는 이어가고 있다. 보이지 않는 만큼씩, 아주 조금씩 자라고 있다.


나는 오늘도, 오늘만큼의 씨앗을 뿌린다.

나마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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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