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하루가 아니라 한 계절이 지난 것 같다. 양 발을 허벅지 안쪽에 올린 가부좌 상태에서 숨을 정리하며 여름 한낮처럼 길게 늘어진 스물네 시간을 생각한다. 시간은 절대적이지 않지. 우리의 바탕을 공평히 채우고 있을 것 같은 시간은 그때마다 각자 다른 리듬과 감각을 갖는다. 속도나 위치, 심지어 마음의 변화에도 시간의 간격은 달라진다. 매트에서 일어나 다시 매트에 앉기까지, 다른 날들보다 직관이 활발히 움직이고, 미처 모르던 무수한 감각들이 나를 통과해 지나갔던지도 모르겠다.
수련을 하는 내내 생경한 시간의 리듬에 집중했다. 점처럼 찍히다가 팽창하는 시간들. 시간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좌표처럼 그 자리에 머물러, 나와의 거리가 가깝거나 멀게 느껴질 뿐이다. 손바닥 두 개쯤 이어 붙인 폭의 고무 매트 위에서 숨을 뱉듯 생각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는 길, 선생님이 찍어준 영상을 보다가 이번에는 완전히 반대의 생각을 들이마셨다.
라자카포타를 할 때였다. 팔을 제대로 뒤로 뻗지 못하고, 골반도 열리지 않는 나에게 선생님이 다가왔다. 자, 숨을 내쉬고,라는 말과 함께 팔을 뒤로 모았다. 간신히 호흡을 이어가며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버티는데 일백 년은 지난 줄 알았다. 아니, 적어도 20초는. 그런데 찍힌 영상을 보니 5초도 되지 않는다. 이게 뭐야, 이렇게 짧다니. 밀어낸 팔이 우습도록 갸륵했다. 순간,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떠올랐다.
“Time is the number of motion in respect of before and after. (시간은 ‘이전과 이후’에 따른 운동의 수/척도이다)”
이전과 이후. 그 말을 따른다면 나는 라자카포타의 5초 동안, 평소 5초에서는 결코 알지 못하던 무수한 변화와 동요를 겪었던 걸까. 팔 근육의 떨림과 등의 긴장, 몸 앞면의 경직들. 하기야 평소 걷거나 앉는 자세에서는 알 수 없던 몸의 작용들이다. 거대한 덩어리에서 하나하나 벌어지고 떨어져 나온 무수한 조각이 연상된다. 그 조각을 하나씩 세고 있는 나 역시도. 좌표처럼 존재한다고 믿던 시간이 몸 안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흐르고 퍼진다. 기쁨이 시간을 간략하게 줄인다면 괴로움은 시간을 잘도 늘리는 재주가 있는 것이다.
다시 라자카포타. 짧거나 길게.
또다시 시간이 점처럼 찍히다가 일제히 팽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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