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은 없으므로

by 윤신



머리서기 십분, 부장가 십오 분. 좌우로 삼 분씩 기울고, 다시 십 분 어깨로 버티기.


열두 번의 태양 경배자세를 한 뒤 부동자세(아사나)에 들어갔다. 몸의 어느 부위가 떨리는지 몇 번 포기하고픈 마음이 찾아드는지, 어디까지 내가 갈 수 있는지를 바라본다. 몸이 무너지면 마음이 뒤따라 내려앉고 유독 마음이 지친 날이면 몸도 바닥을 긁어댄다. 둘은 연결되어 있어 어느 한 부분이 부족할 때면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왜 계속 무언가를 해야 하는지 같은 질문들이 끊이지 않는다. 마음이 앞서갈 때면 몸을 쓰고, 몸이 마음을 초월하는 날이면 잠시라도 멈춰 숨을 고른다. 그러면 질문보다는 실재의 감각에 더 집중하게 된다. 내가 몸을 움직이길 좋아하는 이유도 '생각이 많다'는 말을 어릴 때부터 들어온 일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온몸의 피가 거꾸로 돌아 다리가 창백해지는 감각을 느낀다. 선생님은 어떤 자세를 할 때 어렵고 의심이 든다면, 자세의 형태보다 숨에 집중하라고 한다. 몸을 부풀리다가 바깥으로 나아가는 숨을 세어본다.

칠십칠, 칠십팔.

눈을 감아도 좋겠지만 나는 아직 머리서기를 할 때 눈을 감는 것이 두렵다. 멀쩡히 서 있는 일조차 가끔은 버거운 세계에서 거꾸로 선 채 눈을 감는 것은 아직 감당할 수 없는 모양이다.


머리서기를 하는 동안 몇 번의 위기가 찾아온다.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몸의 위기다. 손에 땀이 차고 눈물이 고인다. 목과 등줄기에까지 땀이 흐르는 게 느껴진다. 시선이나 훌쩍임, 침을 삼키는 일에도 몸은 균형을 잃기 쉽다. 흔들려도 버틴다. 다리가 떨어지면 올라오면 된다. 알면서도 할 수 있는 만큼은 버틴다. 주어진 약속을 지키기로 한다.


부장가는 후굴 자세라 말할 것도 없이 허리에 온 감각이 집중되는 것 같지만 오래 버티다 보면 팔 위쪽까지 덜덜 떨린다. 하긴 어깨서기도 마찬가지다. 이름 그대로 어깨서기인데도 자세를 유지하다 보면 주체할 수 없이 다리가 떨린다. 하나의 동작을 위해 온몸이 애를 쓰고 있다, 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누군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면 우주의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함께 움직인다는 말을 떠올린다. 그 우주에는 거창한 것뿐 아니라 부엌의 그릇 같은 아주 사소하고 자잘한 것까지도 속한다. 어깨서기를 하는 지금도 별 다를 것 없지 않나. 내가 원하는 하나의 자세를 실현하기 위해 온몸의 근육, 핏줄, 호흡, 관절 하나하나가 함께 버티고 있다. 나는 '나'라는 존재이기 이전에 무수한 세포와 혈관, 장기들의 우주다. 다리를 고쳐 세우며 나라는 우주에 대해, 덜덜 떨면서도 애를 쓰는 몸에 대해 애틋해한다. 그리고 동시에 생각한다. 조금만 견뎌. 십 분은 금방 지나가. 십 분은커녕 세상에 영원이란 없거든.


어떤 생각이든 몸의 상태든 끝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환희든 불행이든 더 이상 앞이 상상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나 어디든 끝이 있다. 부동을 하며 그런 생각을 한다. 얼얼한 감각이나 이대로는 어딘가 고장 날지 모른다는 불안도 끝이 있을 거라고, 한번 끝이 나고 나면 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아무 일도 아닌 이야기가 되어있을 거라고.


호흡을 이어간다. 누워서 송장자세를 하다 어딘가가 풀린 듯 몸과 마음이 한순간에 놓이는 경험을 한다. 현실과 조금 떨어진 듯한 감각. 이대로가 좋아 잠자코 지켜본다. 그러나 이 순간도 이내 끝나고, 나는 물을 마시고 길을 걷고 집에 돌아갈 것이다. 이어지고 이어져 내 생은 지속될 것이다. 나의 신화는 여기에 있다*.









*<연금술사>에는 '자기의 신화를 살라'는 말이 있다.





_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