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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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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Aug 01. 2020

네가 태어난 날, 하루의 기록

출산날, 20191126





네가 태어난 날의 이야기를 쓰려는데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

8월 20일 이후 매일같이 네가 세상으로 나오길 바랐지만 정말 짠, 하고 눈앞에 나타날 줄은 몰랐다고 얘기하면 믿을까. 배는 점점 부르는 데도 뱃속에 하나의 생명체가 '진짜' 살고 있다는 실감이 나질 않았거든.

심지어 태어난 널 보고 나서도 '얘는 어디서 온 아기일까, ' 하고 생각했으니 말 다 했지.



네 생일은 8월 31일이야.

엄만 그날 새벽 12시부터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어. 네 아빠는 새벽 2시까지 근무였기에 집엔 나 혼자였단다. 두 마리 고양이는 제외할게. 아픈 날 곁눈질로 보지도 않고 종횡무진 거실을 뛰어다니며 놀았거든.  

미약한 진통을 조금씩 규칙적으로 느끼다가 복숭아 같은 선홍색 피를 보곤 바로 네 아빠에게 연락한 게 아마 시작일 거야.

하지만 그때까지도 우린 네가 바로 태어날 거라 생각하지 않았어. 그저 여느 엄마들이 겪는 배뭉침이 심한 정도일 거라 생각했지. 그러다 문자를 주고받던 은지 이모가 보낸 '어쩌면 양수가 새는지도 몰라'라는 말에 혹시나 싶어 아빠가 온 새벽 세시쯤 다리를 건너 청라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어. 원래 다니던 섬 안의 산부인과 병원은 분만을 안 해서 섬을 벗어나야 했거든.



달리는 차 안에서 배는 조금씩 더 아파왔지만 우린 병원 다녀와서 먹을 음식을 얘기하기에 여념이 없었어. 분명 병원에서 돌려보낼 거라 생각했거든. 보건소에서 주최한 두 시간짜리 출산 준비 수업에서 들었던 라마즈 호흡을 흉내 내며 뭘 먹을지 고민했어. 씁하, 씁하.

아픈 걸 핑계로 소고기를 사 먹어볼까?

씁하, 씁하.

근데 갑자기 양꼬치가 땡기는데?

씁하, 씁하

이 시간에 파는 데가 있으려나.



새벽이라 응급실로 가서 검사를 했는데 이게 웬일이야. 은지 이모 말대로 양수가 새고 있었던 거야(thanks to 은지). 바로 입원해야 한다는 간호사의 말에 우린 얼어붙었어.


'아니, 내 마지막 만찬은?’

(아기 낳기 전 먹는 음식을 마지막 만찬이라 불러)


출산보다 허기가 더 중요했다기보다 배고프면 아기를 낳을 힘이 없을 거라고 치자.

입원 사실을 들은 은지 이모가 정곡을 찔렀어.


"니 배 살살 아파올 때 고기 굽었어야 했다."


공복으로 기약 없는 시간을 버텨야 하는 괴로움이 시작되었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텅 빈 위장을 붙들고 엄만 촉진제를 맞으며 신음했어. 양수가 새면 24시간 이내에 분만을 해야 하거든.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진통 곡선이 시작되자마자 음식에 대한 생각이 똑 떨어진 건 다행인지 불행인 건지.

그 새벽 커튼 너머로 들리는 다른 산모들의 신음소리를 난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야. 흐느끼고 입을 틀어막고 억누르는 어미의 비명을 말이야.   



킥복싱 선수에게 배를 정통으로 차이거나 거인이 내 배를 쥐어짜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감각이었어(아마도). 그런 지독한 통증이 지속되는 동안 네 아빤 엄마 손을 꼭 잡고 연신 다독였지.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

내가 뭘 잘하고 있는 건지는 몰랐지만 그의 말이 힘이 되었던 것 같아. 머리카락이 바짝 서도록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나보다 훨씬 침착해 보이는 사람이 곁에 있는 건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거든.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날을 위해 그가 유념한 건 절대 '힘들지?', '힘내.'라는 말을 하지 않는 거였다더라. 묻지 않아도 힘들어 죽겠고 누구보다 힘을 뼛속까지 짜내는 사람이 아기 낳는 도중의 엄마니까 말이야. 출산 전 아빠가 알아야 할 목록이라는 어느 동영상을 보고 배웠다던데, 참 귀엽지.



그날을 생각해보면 진통을 하며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척추에 바늘을 꽂는 거였어. 나도 모르게 비둘기 똥 같은 눈물이 떨어지던 거 있지.

후드득, 후드득. 무통 주사를 맞기 위한 준비였는데 결론적으로 보자면 척추마취를 위한 준비가 되었어. 11시까지 촉진제를 맞고 호흡을 해도 네가 나올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거든. 네가 나와야 할 자궁 문도 1.5센티(처음 병원 갔을 때와 같은 길이)였고 넌 조금도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어. 게다가 넌 3.61kg이었기 때문에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지.



솔직히 말하자면 남은 시간 내에 자연분만을 할 자신이 없었던 난 결국 수술을 결심했어. 선생님도 '그게 낫겠습니다.'같은 말을 했던 거 같아. 그때의 기억은 사실은 어느 것도 온전하지가 않아.

지금에야 생각하면 좀 더 참고 기다리고 애쓸 걸 그랬나 싶어 그 맘을 네 아빠에게 얘기했더니



"그때 그 고통을 다 잊었군. 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는데... 그리고 찰떡인 그래도 안 내려왔을 거야. 엄마 뱃속이 좋아서."

"그렇지? 그랬을 거야. 정말."



부부의 합리화가 꽃을 활짝 핀 거지.

12시 35분에 아마 수술을 했던 거 같아(말한 대로 기억이 온전치 않아). 진통의 괴로움이 무색하게 수술은 순식간에 끝났어. 물론 난 차가운 금속의 수술대에 누우며 덜덜 떤 기억밖에 없지만 말이야.

마취에서 깬 뒤로 며칠은 걷기조차 힘들어 네 모습을 본건 이틀이 지나고 나서야.

처음 본 넌 얼마나 작던지.

눈을 감고 입을 앙다문 채로 자고 있었어.

 -_- (이 것과 똑같아)

엄마 뱃속에서도 이 표정을 하고 있었을까.



두 팔 사이에 고스란히 안긴 네 작은 몸, 보드라운 머리칼, 말랑한 찰흙으로 빚은 것만 같은 피부.

난 차마 네 뺨을 만지지도 못했어. 손가락 지문에 닿은 네 살에 상처라도 날까 봐. 네 살결은 아스라이 유약해 보여 내 둥근 지문마저 널 해칠 수 있다 생각한 거야. 그래서 한참을 보기만 했지.

가지런한 네 속눈썹을 보고 붉게 달아오른 네 뺨을 보고 가쁜 숨을 내쉬는 네 가슴을 보고.



그게 벌써 87일 전이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야. 12주가 흐른 지금의 넌 방긋방긋 잘 웃고 볼도 통통한 아가가 되었지. 몸무게는 거의 두 배로 늘었고 말이야.



그냥 문득 사진을 정리하다 네가 태어난 날의 사진을 보곤 그날이 문득 떠올라 주절주절 말을 꺼냈네.

여름이 끝난, 입추가 시작된 8월 말.

나의 긴 호흡 끝에 세상의 네 호흡이 시작된 그날,

8월 31일의 짧고 긴 시간을 말이야.



찰떡아, 건강히 태어나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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