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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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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Aug 02. 2020

멋쟁이 토마토

동요와 난데없는 자아반성, 20191126





좋아하는 보사노바, 재즈는 어디 가고 요즘 하루도 빼먹지 않고 듣는 장르는 동요다. 심지어 홀로 음악 스트리밍 어플을 열고 잠잠히 오랜만에 취향의 곡을 듣다가도 불쑥 띵똥띵, 실로폰 소리가 나고는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며 토끼의 일정을 추궁하는 생기 맹랑한 동요가 흘러나온다. 거실의 스피커와 블루투스로 연결해 듣던 일명 찰떡이 리스트가 내 조촐한 선곡 아래 그대로 남아서다.

어깨 옆, 체온 어딘가, 옷에 밴 젖내, 주위 모든 곳에 남은 아가의 흔적을 뗄 수 없는 것처럼 동요도 내 일상에 찰싹 붙은 것이다. 



찰떡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고 나선 내내 93.1 클래식 FM 만 틀어놓다가 나이에 맞는 옷이 있듯 그에 맞는 음악도 있을 거란 생각에 하루 한두 시간 아가를 위해 동요를 튼다. 하루의 습관처럼 듣다 보니 어느샌가 가사를 외워 동요를 따라 흥얼이고 거기에 맞춰 둠칫 둠칫 몸을 움직인다.

최근 입에 붙은 곡은 '아기돼지 삼 형제'다. 모르던 곡이지만 한 번 듣고는 나도 모르게 계속 그 노래를 부른다. 젖병을 씻다가도, 설거지를 하다가도, 청소기를 밀다가도.



“늑대가 나타나 후- 늑대가 나타나 후- ”



촛불 끌 일도 없는데 자꾸만 후-후- 거리고 만다. 동요가 가진 유행가의 훅 hook과 같은 중독성과 가사의 따뜻함, 사랑스러움이 좋아 늘상 흥얼거리는 걸까. 아니면 단순히 자주 들어서일까. 

어쨌든 동요의 그런 밝은 리듬과 기발한 가사에 푹 빠져있는 요즘이다. 매번 거의 백 곡을 랜덤 플레이해서 듣는데 그중 ‘멋쟁이 토마토’란 곡을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이지 가사를 찾아 확인할 정도로 화들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울퉁불퉁 멋진 몸매에 
빠알간 옷을 입고 
새콤달콤 향기 풍기는 멋쟁이 토마토 
나는야 주스 될 거야 (꿀꺽)
나는야 케첩 될 거야(찌익)
나는야 춤을 출거야(헤이)
멋쟁이 토마토 토마토!



토마토의 꿈 따위 생각해본 적도 없지만 토마토의 꿈이 주스가 되고 케첩이 된다는 게 왠지 모르게 잔인하달까, 서늘하달까. 이 곡을 들은 아이들이 밤새 토마토가 주스화 되고 케첩화 되는 과정을 상상하며 섬뜩해 하진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 부분의 '토마토!'하고 외치는 부분은 토마토의 마지막 절규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하고.  

이 모든 억측은 아마도 어린아이의 맘이 아닌 어른의 귀로 들어 토마토를 인간화시켜 버린 탓이다. 그러고 보면 주스나 케첩은 토마토의 실현 가능한 잠재 능력이자 꿈이다. 제 온몸을 부숴 트리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상징적으로는 인간이 성장하고 꿈을 이룬다는 것 역시 그렇다. 



그런 시점에서 보자니 울퉁불퉁 멋진 몸매의 토마토는 그렇게 위대한 꿈을 꾸는 건가, 싶었다. 자신을 희생해서까지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겠다는 건가. 이것은 내가 바라는 자아 평온보다도 훨씬 고차원적인 것이 아닌가. 이런. 토마토도 그런 장엄한 꿈을 꾸는데 난 도대체 뭘 꿈꾸며 살아온 거지. 내 꿈이 ‘그저 잘 먹고 잘 살자’라는 걸 차마 토마토 주스나 케첩 앞에서는 말하지 못할 것 같다. 

그나저나 노래 제목 한번 잘 지었다. 이런 ‘멋쟁이 토마토’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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