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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Aug 11. 2020

미지와의 조우

엄마가 작은 거인이 되어가는 동안, 20191205




아기에게 이 세상은 더 이상 흑백의 모노톤이 아니다. 엄마가 촐촐할 때 먹는 바나나는 밤 사이 가로등처럼 노랗고, 아빠가 입는 잠옷은 초록색에 검은 체크무늬, 집 밖 마실 나갈 때 타는 유모차는 수박 속처럼 새빨갛고, 제가 주로 입는 옷은 봄에 흩날리는 벚꽃을 떠올리는 연분홍빛이다. 색의 이름까지는 아직 몰라도 색의 차이는 알 것이다.

또 한 걸음의 여정이 시작했다.



오늘 아가는  일생(이라고 해봤자  달입니다만) 함께 지냈던 고양이를 호기심에 가득  눈으로 좇았다. 아마 처음으로 확실히 고양이를 인지한  아닐까 한다. 멀리서 어슬렁거리는 토비를 고개로, 눈으로 따라다니더니 토비가 얼굴 바로 앞까지 오자 빤히 바라본다. 토비는 아가의 냄새로 아가는 토비의 모습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다. 세 달 만에 제대로 된 첫인사를 한 셈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물을 구분하고 나서는 그전과 확연히 다른 행동을 한다. 예를 들어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눈을 감고 지내던 첫 달의 일이다. (배고파서 우는 찰떡이의 울음은 지금도 그때도  과히 맹수를 능가한다. 성장과는 상관없이 사람에겐 변하지 않는 것도 있는 법이다)

그날도 아기가 주먹을 꼭 쥐고 있는 힘을 다해 울고 있는데,


"맘마 줄게, 맘마!"


하며 찹쌀떡 군이 자기 코를 아가 입에 갖다 대는 것이다. 그런데 또 아가는 젖인지 알고 덥석 아빠 코를 앙! 하고 물고 말았다. 그 장난이 재미있었던지 찹쌀떡 군은 시도 때도 없이 코를 들이댔고 그럴 때마다 찰떡이는 아빠의 실속 없는 코를 앙증맞고 부드러운 입으로 합! 하고 먹어댔다.



하지만 이젠?

어림도 없다. 킁캉거리며 배고파하는 찰떡이에게 아무리 아빠가 


"자~ 맘마!"


하고 코를 갖다 대도 아가는 말똥말똥 눈을 뜬 채 휙, 고개를 돌린다.   


"에휴, 이젠 눈 보인다고 내 코도 안 먹고."


툴툴대는 찹쌀떡 군에게 뭐라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가의 또렷한 세상으로부터 생긴 새로운 기쁨으로 대신하라고 다독여야 할까. 그 기쁨은 '아가에게 코 먹이기'따위에 비할 게 아니니 말이다. 우리를 제 눈동자에 담아 환하게 빛내는 웃음과 눈과 이 없는 잇몸으로 짓는 여러 가지 표정, 까만 눈 속의 하나의 깊은 우주, 아가가 발견하는 환희의 순간들을 우리가 도대체 언제 어디서 느낄 수 있겠냐고 무마해야 할까. 



정말이지 '누워서 먹고 자고 똥만 싼다'고도 생각되던 존재의 사랑스러움이 꽃처럼 피어나는 시기는 지금이다. 온몸이 아스라 질 것 같은 순간에도 아가의 티 없는 웃음이면 7kg인 아가를 깃털 날리듯 사뿐, 안아 올리게 된다. 그뿐인가. 다른 손에는 이미 4-5kg에 육박하는 아기 짐을 들고 있다. 3kg짜리 아령을 들고 '어머, 힘들어요.' 하던 시절은 지난 것이다. 가득 찬 시장바구니를 들고 아기 외출용 짐을 메고 아기띠에 아기를 안고 씩씩하게 거리를 활보한다. 아기가 매일 새로운 발견을 하고 피어나는 동안 엄마는 작은 거인이 된다.



태어난 지 97일.

삼일 뒤면 백일이다. 찰떡이가 백일의 기적을 보일지 백일의 기절을 보일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대로만 건강히 자라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좋다. 매일 성장하는 자체로도 대견스럽기 때문이다. 내겐 뻔한 집안도 아가에겐 흥미로운 우주다. 어제처럼, 오늘처럼 모든 것을 제 감각으로 기억하고 찾아가길 작은 사람에게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그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 우리에게 들려줘도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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