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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Aug 14. 2020

백일상과 달리기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20191208





백 미터 달리기처럼 숨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우린 내일의 죠처럼 하얗게 불태우지도 않았고 중간중간 숨구멍을 틀 수 있는 나름의 하프타임을 갖기도 했다.

찰떡이를 가졌을 때부터 듣던 말이 있다. 

'나중엔 더 힘들어, 지금이 그나마 편할 때지.'


입덧으로 고생하고 만삭으로 낑낑거릴 땐, 

'야, 지금이 좋지. 애 옆에 있어봐라 아무것도 못해.' 


또 밤잠 한번 제대로 못하는 지금은 

'아이고, 아기가 기기 시작하면 또 그때부터 체력 전쟁이야.'


매번 다른 색이지만 같은 질감의 레퍼토리로 바뀌었다. 어쩌든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힘들다는 얘기다. 아기를 키우는 일엔 오로지 오르막만 있고 내리막은 없는 걸까 아득하다가도 갈수록 힘들 다는 그 육아, 난 천천히 쉬어가며 하겠다 생각했다. 있는 힘을 다해 달려오지 않은 건 어쩌면 그 말들 때문이다.

'내일은 더 힘들어.'

아기를 키우는 일은 단거리가 아닌 장거리겠구나.  



오늘은 아가가 첫울음 섞인 숨을 쉰 지 딱 백일 되는 날이다.

어설프듯 독특하게 꼰 자세로 수유하는 엄마와 아직 너무나 조심스러워 아기 손톱 한 번 못 자르는 아빠 곁에서 찰떡이는 고봉밥에 김 나듯 모락모락,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우리는 뭐하나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 고맙게도 백일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백 일치의 성장을 해왔다. 백 미터 달리기는 우리가 아닌 찰떡이가 한 셈이다.

젖 먹이고 트림시키고 재우고 기저귀 갈고 또 젖 먹이고, 무거운 행군 배낭을 메고 수없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하루의 반복이라 생각했건만 그 사이에도 아기는 시야가 생기고 몸을 인지하며 제 딴에는 옹알옹알, 속말을 말할 수도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난 그저 제자리에서 머물렀다 생각했는데 실은 아가를 업고 백 일치의 길을 걸어온지도 모르겠다. 걷다 힘들면 찹쌀떡 군의 넓은 등에 기대 쉬기도 하고 번잡한 마음을 가만히 지켜보기도 하면서. 



오늘도 온종일 엉덩이를 들고 몸을 뒤집으려 용쓰는 자태를 보니 아마도 이번 달 안에 뒤집기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때는 지금보다 정말 더 힘들지, 아님 몇 달이 지나 아기가 기게 되어야 더 힘들지 모르겠다. 겪어보지 않은 내일을 알 방법이 내겐 없다. 다만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건 아가가 제 온 힘을 다해 성장할 때 곁에서 묵묵히 받쳐주는 것뿐이다. 나보다 더 애를 쓰며 하루를 살아내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매일을 단거리 뛰듯 성장하는 아이를 쓰다듬으며 '괜찮아'라고 얘기하고 기다려주는 것. 

미리 지레짐작으로 고단한 내일을 가늠하지 않는 것. 

나를 믿고 아가를 믿는 것. 

그것만이 불확실한 내일에 대한 내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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