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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적 May 19. 2020

초여름 맞이

독립작가의 나른한 일상

폭우가 예보된 월요일은 꽤 습했다. 이대로라면 일찍이 에어컨을 가동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에어컨 필터 청소를 하기로 했다. 에어컨 자체에 쌓였던 먼지를 닦고, 필터를 꺼내보니 작년 여름의 묵었던 먼지가 상당히 껴있었다.

10분이면 끝내는 에어컨 필터 청소. 해 놓고 나니 뭔가 되게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에어컨 필터 청소 하나만으로 뿌듯함을 느끼는 나. 그동안 내 상태가 어땠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특출 난 사람들 속에서 특출 난 일을 하지 않는 나에게서 초라함을 느꼈던 것 같다. 언제부터 대단한 사람, 특별한 사람, 매일 좋은 일만 일어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게 된 걸까? 아니, 사실 언제부터인지 알고 있고, 무엇 때문인지도 알고 있다. 단지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



옛날부터 갖고 싶었던 풍경을 샀다. 유리종에 여름을 상징하는 것들 중 하나인 알록달록 나팔꽃 그림이 그려진 풍경이다. 잔잔한 바람이 불면 유리와 유리가 맞부딪치며 나는 치링치링 소리가 여름이 왔다는 것을 알려 줄 것이다. 그것을 작업실에 두고 감상하기로 했다. 아직 설치하지는 못했지만, 벌써부터 두근거린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변하지 않고 다가오는 몇 가지들이 있다. 강렬한 아카시아 향기라던가, 아스팔트를 적시는 비 냄새, 시원한 아이스커피 또는 캔맥주, 매미 소리, 그리고 풍경 소리. 매년 찾아오는 계절의 상징들처럼 나 자신과 내 자아도 굳건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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