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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을살아가는힘 Jun 22. 2021

지금의 나를 돌봐주기

『위대한 엄마들의 유희 시간』7장

여정의 마지막에 서서      


10주간의 『위대한 엄마들의 유희 시간』을 지나오면서 우리는 좀 더 자기 자신에게 더 다가간 느낌을 받았다. 첫 주에 꾸며보았던 자신의 이름을 다시 꾸미는 시간을 가졌다. 첫 주보다는 좀 더 구체적이고 좀 더 꾸며진 느낌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자연스레 나왔다. 코로나로 인해 공백이 생긴 돌봄의 현장에서 엄마들은 자신을 보살피고 돌보는 시간과 여유를 얻지 못했다. 매일이 불확실성과 바이러스의 공포 속에 나 자신보다 먼저 아이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긴장감 속에 살아왔다. 아직은 끝나지 않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 아래 조심스레 우리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어떤 것을 먹고, 어떻게 자고, 내 몸은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하길 원하는지, 엄마이기 전에 나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의식적인 눈길을 주는 활동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알게 되었을까?      


나를 위한 돌봄의 결핍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희생하고 헌신하는 모성 이미지를 생각해보면, 아이를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희생하는 것이 엄마로서 당연한 것이지만 엄마 스스로를 돌보는 것은 왠지 어색하다.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을 추앙하는 반면, 가끔 인터넷 댓글에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팔자 좋게 커피숍에서 커피 마시는 엄마들이라며 혐오하는 글을 볼 때면 속이 아려온다. 한 아이를 돌보는 일이 귀중한 가치가 있는 일이지만 돌보는 일에 대한 가치는 제대로 매겨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가정을 돌보는 것의 경제적 가치와 정서적 가치를 따져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혼자서는 불가능한 이 모든 돌봄 노동 속에 엄마들은 더 잘 해내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탓하기도 한다. 엄마로 사는 것은 너무나 버겁고도 참으로 눈치가 많이 보이는 역할이다. 혼자 아등바등 아이를 돌보다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하루 종일 징징대는 아이를 견뎌주지 못해 집 밖을 뛰쳐나가고 싶은 일상을 보낸 날이면  세상 우울한 사람이 되어 스스로를 자책했던 시절도 있다. 돌봄을 나누기 전까지는..      


돌봄의 나눔       


첫째를 낳고 키우면서 석사논문을 쓰게 되었을 때 일이다. 평일에는 아이가 어린이집 간 사이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 죄인이 된 죄책감을 가지고 일분일초도 아껴서 논문에 집중했다. 가끔 학교에 가서 교수님과 논문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면 교수님은 놀라면서 말하셨다. 어떻게 이렇게 논문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어요?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 내 논문 주제가 양육스트레스였고 논문 쓰는 것을 압도하는 스트레스를 아이를 키우면서 받아왔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남편이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 연구에 대한 프로젝트를 하기도 했는데, 주변에서의 반응은 주말에 아이와 놀아주고 보살펴주는 남편은 세상 더 없는 자상한, 심지어 주말에 까지 아이를 돌보는 안쓰러운 남편이고, 나는 일과 공부까지 해내는(?) 독한 엄마로 평가받았다. 남편과 함께 아이를 돌보는 상황을 만들기까지도 참 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당시 아이와 더 좋은 관계를 위해 밖으로 나와야 했었다. 그때 가장 고마웠던 분들이 어린이집 선생님들이었다. 아이들을 안아주고 세상 예쁜 머리로 하원 시켜주시고 돌보느라 팔에 파스를 붙이고 계시면서도 늘 믿고 아이를 맡겨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해주시는 마음 따듯한 분이셨다. 내 석사 논문이 나오는 날 나는 논문을 들고 어린이집 선생님을 찾아가 건네며 선생님 덕분에 쓴 거라며 이야기하는데 눈물을 왈칵 쏟았다. 나 혼자 돌봐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는데 함께 돌보는 것이라고 느꼈던 순간이었다.           


자기 돌봄과 아이 돌봄의 상관관계     


한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처럼, 한 아이를 온전히 돌본다는 것은 엄마 한 사람으로는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엄마와 아빠, 온 집안 식구들이 뛰어들어 한 아이를 돌봐도 될까 말까이다. 엄마가 도움 없이 한 아이를 돌볼 수 있다는 믿음부터 내려놔야 할지도 모르겠다.


엄마도 사람이기에 소진되고 탈진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내 자기 돌봄에 대한 연구들을 살펴보면, 보육교사, 심리상담자,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의 스트레스와 소진 등을 관리하기 위해 자기 돌봄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타인을 돌보는 것은 자기 소진과 공감 피로와 스트레스를 가져온다. 엄마라고 해서 아이를 돌보는 일에 늘 즐겁고 에너지가 계속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아이와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돌보는 사람으로 자신을 긍정하고, 회복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아이가 어릴 때는 시간과 욕구에 맞춰 먹을 것을 주고 입히고 놀아주었지만, 아이가 점점 커가면서 아이는 부모의 삶을 모델링한다. 무엇보다 아이를 한 사람의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고 키우려면 부모 스스로도 자신을 독립된 인격체로 경험해야 한다. 이를 위한 자기 돌봄은 건강한 부모 자녀관계를 위해서는 필수적이지 않을까?


부모가 되기 전에 희생해야 한다는 조언보다
자기 자신을 잘 돌보는 법에 대해 배울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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