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하는 게 이해가 안 되신다 하시니, 당신의 눈높이에 맞춰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메일로 정황을 설명드립니다.
그러니까 약 이틀 전의 일입니다. 아침이었죠. 저는 평소처럼 알람을 듣고 일어나 모닝커피를 마셨습니다. 그게 벌써 거진 10년째 되는 습관이거든요. 아무것도 모르는 의사 놈팡이들은 공복의 커피가 몸에 나쁘다지만, 저를 보세요! 얼마나 위와 장이 건강한지. 제 건강의 비결은 그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공복에 뜨거운 커피 한잔 말입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합니다. 뭔가 중요한 뭔가가 빠진 느낌이 든 겁니다. 어딘지 모르게 밍밍한 커피의 느낌- 요컨대 6개월은 더 된 커피를 끓여마실 때의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스타벅스나 블루보틀에서 파는 구두 뒤 축을 우린 것 같은 커피였죠. 커피도 갓 어제 볶은 신선한 커피고, 딱히 우릴 때도 별달리 변할 게 없어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렇게 커피를 다 마시고 나서 출근을 하려고 세수를 하려는데, 손에 걸리는 느낌이 이상한 겁니다. 그래서 거울을 봤는데, 아뿔싸, 코가 없어진 게 아니겠습니까. 자고 일어난 사이에 코가 없어졌다니까요! 너무 놀라서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코는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코가 있던 자리에는 흉물스러운 두 개의 구멍만 있었어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없어진 코 자리를 만져도 아프지는 않은 것이, 마치 누가 강제로 코를 떼어간 게 아닌 것 같았습니다. 마치 코 스스로가 제 몸에 붙어있기를 거절했다는 느낌이랄까요. 저는 이대로는 출근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시대에 코도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물론 저는 좀 잘 생긴 사람들의 축에 속하기 때문에 코가 없이도 충분히 근사했지만 말입니다. 저는 코가 특히 잘 생긴 편이었거든요. 길가로 나가면 모든 여자들의 시선을 뒤로 잡아 끄는 그런 종류의 매력을 갖춘 저이지만, 특히나 코에게 그런 시선이 두드러지게 머물렀다고 할까요. 그런 생각까지 하자 어떻게든 코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회사에 전화를 해서 몸이 좀 아프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수화기 너머로 점잖치 않은 고성이 들려왔습니다. 뭐 물론 당일에 안 나가겠다고 통보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알고, 하필 오늘 6개월이나 준비한 중요한 사업 계획 발표가 있다는 걸 알긴 합니다. 하지만 제 코가 없어졌다니까요? 클라이언트가 제 코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면 바로 비웃을게 뻔했습니다. 경쟁사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맺고 있는 모든 인적, 사회적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저에게 실망감을 남겨줄 수는 없는 노릇이죠. 저는 책임감 있는 남자이기 때문에 일단 욕설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회사도 제가 코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면 찾아가 보라고 했을 테니까요.암요.
저는 옷을 대충 챙겨 입고 나왔습니다. 옷차림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군요. 틀림없이 멋지게 빼입었을 테죠. 선생께서는 코를 잃어버린 적이 없으실 테니, 그게 상당히 이상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세상이 한 번에 휙 하고 바뀌는 느낌이랄까요. 옷차림 정도는 기억 못 하게 만들만한 중요한 일이죠. 선생처럼 꽉 막히고 닫힌 세계에서 살아온 사람에게 이해시키는 게 가능할는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저는 나와서 서울 시내를 한 없이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점심 즈음이 되자 저는 남산 부근에 닿았습니다. 아, 물론 그냥 돌아다니기만 한 건 아닙니다. 저처럼 명민한 두뇌의 소유자에게는 산책이 어마어마한 생각의 도구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저는 생각을 했습니다. 중간에 짧은 치마를 입은 아리따운 여성에게 에티오피아 산 커피의 훌륭한 맛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자고 제안하거나 멋진 수트를 입은 신사분께 머리를 쓸 때 필요한 간단한 다과를 제공받고자 대화를 청했던 일도 있었긴 하지만 말입니다. 결과적으론 두 젊은 친구들이 연인이었던 게 밝혀지면서 두 사건 모두 일단락되었지만, 만약 제가 코만 있었더라도 둘 다 쟁취할 수 있었을 텐데요. 아직도 왼쪽 뺨이 얼얼하군요.
하지만 이런 명민한 두뇌라도 코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생각하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는지, 배가 고파서 저는 일단 근처 음식점에 들어갔습니다. 멋진 브런치 집이었는데, 저는 많이 먹을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아서, 일단 계란 한 알을 시켰습니다. 오, 만약 선생이 제 정도의 화술을 할 줄 안다면 우아하고 품위 있게 브런치로 계란 한 개를 주문하는 방법에 대해 알게 될 겁니다. 물론 지금도 빌어먹을 계란 하나에 사천 원이나 줘야 한다는 게 믿기지는 않지만……. 그렇게 저는 저의 계란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저 문에 붙은 종이 요란하게 울리더니, 제 코가 걸어 들어오는 겁니다! 아니 틀림없이 그건 제 코였습니다. 물론 흰색으로 반짝반짝 거리는 의사 가운을 입고, 명찰에는 버젓이 다른 이름이 있기는 했지만, 틀림없이 제 코였다구요! 어째서 내 코에 팔다리가 달려있고, 버젓이 얼굴이 있고, 브런치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저는 코를 보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벌떡 일어나 코에게 달려갔습니다. 가볍게 악수로 인사를 하고 - 하! 제 코와 말입니다 - 저는 제 소개를 했죠. 하지만 코는 저를 알아보지 못하더군요. 코는 점심을 먹으러 왔다고 했습니다. 저는 급하게 자리를 옮겨 달걀과 함께 코와 합석했습니다. 코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물론 그럴 만도 하죠. 제 주인이 여기 있으니까요. 저는 코의 반대편에 앉아서 말했습니다.
"실례지만, 당신이 제 코라는 것을 아십니까?"
"아니요, 저는 외과의사 P입니다. 저를 아십니까?"
저는 코의 가소로운 수작에 코웃음이 나오더군요. 물론 코가 없어서 나오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저는 코가 있던 자리를 가리키면서 말했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의사 가운을 입고 의사 행세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당신이 내 코라는 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코는 당황한 나머지 안색이 창백해지더군요. 물론 코에게 안색이란 게 있다면 말입니다.
"아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나는 의사라니까요!"
"자 여길 보세요, 코가 없죠? 당신이 없어서 매우 불편하니, 어서 빨리 제자리로 돌아오시죠."
"아니 상식적으로 제가 코라는 게 말이 됩니까? 저는 당신이 원래 그렇게 못생긴 줄 알았어요!"
저는 코의 망언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났지만, 코의 주인으로서 코를 달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대화 도중에 종업원을 불러 와인 한 병과 수플레 세트를 하나 더 시켰습니다. 저를 위해서요. 주인이 배부르면 코는 당연히 기분이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여하튼 수플레가 나오는 사이 나는 코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여하튼 저는 당신이 원래 자리로 돌아오기 전까지 절대로 떠나지 않을 거요."
코는 창백해지다 못해 파래지더군요. 코는 벌떡 일어나더니 도망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또 어떤 사람입니까. 무려 합기도를 1개월여간 통신 학습으로 배운 운동선수급이란 말입니다. 저는 재빨리 도망치려는 코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코의 품 속에서 지갑을 꺼내었습니다. 물론 제 코의 지갑이긴 하지만, 그건 곧 제 지갑이기도 하죠. 저는 코의 주인이니까요.
코는 얼굴이 빨개져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그새 자리에 앉아 수플레를 크게 한 입 떠먹으면서 와인을 마셨어요. 이럴 때 호탕하게 먹는 게 또 저의 남자다운 모습이랄까요. 제가 점심을 즐기는 내내 코가 경찰을 부른다며 시끄럽게 굴기는 했지만, 설마 코 주제에 경찰을 부를 수 있을 리가 없을 터입니다.
하지만 코 주제에 진짜 경찰을 부르더군요. 얼마 지나지 않아 멀대같이 키만 크고 눈이 찢어진 놈과 키는 그 친구 반 만한데 코는 같이 온 경찰 놈의 두배는 될 만한 놈이 문을 열고 들이닥쳤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꿋꿋이 브런치를 다 먹고, 공손하게 경찰에게 물었습니다. 제 코가 있던 부분을 가리키면서 말이죠. 그리고 당당하게 요청했습니다. 저 의사를 사칭하는 제 코를 사기 혐의로 잡아가 달라고!
그렇지만 경찰같이 감수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무능한 멍청이 집단이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있을까요. 저는 곧 경찰에 연행되고, 별의별 이상한 죄목으로 구치소에 갇혀 있습니다. 절도라니! 제가 제 코의 돈을 훔쳤다고 생각할 수 있다니! 믿기지가 않습니다. 덧붙여 저는 제 지갑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것도 당신이 꼭 아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두둑한 지갑에 얼마나 들어있는지 미처 세보지는 않았지만, 아주 두둑했다는 것은 꼭 기억합니다.
그래서 변호사 양반, 당신에게 설명드리는 겁니다. 제가 이 재판에서 이기려면 당신이 이 상황을 꼭 이해하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되니까요. 그러니까, 저는 제 코에게 고소당한 거란 말입니다. 꼭 이겨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덧붙여 자신이 의사라고 주장하는 제 코에게 다시 돌아와 주기를 바란다고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PS. 별도의 수임료는 없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런 사소하고 시답잖은 일로 돈을 받는다면 변호사 당신의 직업정신에 위배되리라고 생각됩니다.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