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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데 Aug 15. 2021

성냥팔이 소녀와 남겨진 것들

날씨가 한결 따듯해진 그 해의 첫날이었다. 따뜻한 햇볕에 눈 녹은 물이 신문을 축축하게 적셨다. 신문은 시든 이파리 마냥 펼쳐졌다. 나는 이 기운 없이 축 늘어진 신문을 달래 조심스레 펼쳤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와, 그보다 곱절은 정신없어 보이는 경제란을 지나 문득 아무도 보지 않을 것 같은 신문 이슈란 지면의 구석에 눈길이 닿았다.

‘지난밤 XX구 OO동 담벼락에서 소녀가 동사한 채 발견. 발견 당시 신발이 없고 손에 다 쓴 성냥이 들려있었음. 소녀는 편부 가정으로, 수사 당국은 부모 A 씨를 아동 학대 혐의로 조사 중.’

평소라면 눈길이 스치지도 않았을 그 짧은 기사가 내 관심을 끈 이유는 아직도 알 수 없다. 그게 새해 첫날이 가진 신비한 마력 이리라. 마침 새해라 시답잖은 글 따위를 쓸 마음이 영 내키지 않았기에, 새해를 맞이하는 좋은 핑계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집을 나섰다.


A 씨의 집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OO동은 꽤 부유한 동네라, 가난한 프리랜서 글쟁이인 나로서는 상상조차 벅찬 가격의 비싼 외제 세단이 큰 길가에 즐비했다. 간단하게 점심을 때우기 위해 들어간 카페에서는 근사하게 차려입은 아줌마들이 줄곧 성냥팔이 소녀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너무 불쌍하다느니,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느니 하는 이야기였다. 발갛게 상기된 채로 말이다. 정의감에 고양된 목소리와, 연민에 가득 찬 눈동자였다. 흥분에 가득 차 시킨 메뉴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리고는 동네 외곽, 소녀의 가족이 살고 있는 그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얼마나 가난한 지역인지, 어떻게 그런 곳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느니 하는 따위의 이야기였다.

“도대체 책임질 수 없는 짓을 왜 한담?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는 게 부모의 도리가 아닌가?”

그 말을 당당하게 내뱉는 한 아주머니의 얼굴엔 자부심이 가득했다. 순수함으로 가득 찬 자부심이었다.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옳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순수함과 자부심 말이다. 나는 그 말들을 가만히 듣고 있다, 손바닥 보다도 작은 샌드위치를 한 입에 욱여넣고 동네 외각으로 향했다.

얼마간 발품을 팔아야겠거니 생각했지만, 나는 대번에 A 씨의 집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미 꽤 많은 수의 군중이 겨우 비나 가릴 수 있는 허름한 슬레이트 집 앞에 웅성대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화난 표정으로 쑥덕거리거나, 손가락질을 해대거나, 더러는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분노가 저 허름한 집과, 허름한 집 뒤에 숨어있을 남자에게 향했다.

하지만 통 낭패였다. A의 집을 쉽게 찾을 수 있어서 좋긴 했지만, 이들의 분노를 짊어지고 안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도 그렇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으리라. 그렇기에 서로 눈치를 보면서, 떼 지어 웅성거리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저녁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해가 게으르게 뉘엿뉘엿 넘어가자 사람들은 저녁을 먹기 위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날이 추우니 삼계탕을 먹자느니, 삼겹살을 먹자니 하는 이야기였다. 이곳에서 친해진 더러는 같이 맥주라도 한잔 하러 가는 듯했다. 나는 마지막까지 슬레이트 집을 노려보던 사람이 떠나고도 밤이 더 으슥할 때까지 기다렸다 슬레이트 집의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자 퀭한 눈을 한 A 씨가 나왔다. 따뜻한 환대를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A의 태도는 사람을 영 불편하게 하는 게 있었다. 세상의 모든 불행을 혼자 짊어진 것처럼 얼굴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고, 덕분에 나를 귀찮은 벌레 보듯 했다.

“용건이 뭐야.”

A 씨가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에게 말했다. 대뜸 반말에 기분이 살짝 나빴지만, 나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당신 딸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요. 아침에 죽은 채로 발견된.”

A 씨는 침묵 속에서 무표정하게 나를 더 바라보곤 문을 세게 닫았다. 내 옷깃이 바람에 나풀거릴 정도로 세게 말이다. 그리곤 들릴 듯 말 듯, 얇은 양철판을 뚫고 혼잣말이 들렸다.

“이제 더 듣고 싶지 않아. 진절머리가 난다고. 빌어먹을 놈들 같으니라고. 자기들 잘못은 없는 줄 알아? 왜 다들 나한테만 지랄하는 거야……”

나는 침착하게 문을 다시 두드리면서 말했다.

“아니요! 아닙니다. 저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그냥 듣고 싶기만 하다고요. 아무 말도 하지 않을게요.”

그러자 문이 열리고 다시 A 씨가 나타났다. 하지만 이전과, 이 문이 열리기 바로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고통으로 가득 찬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왠지 모를 절박함이 A를 가득 메우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종종 궁지에 몰린 사람들, 오갈 데 없이 침몰하는 배에 갇힌 사람들을 종종 보곤 한다. 압력용기처럼 안쪽에 무언가 가득 차 있지만, 정신이 이상해질 때까지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는 사람들 말이다. 아무도 그 압력을 빼주지 않거나 스스로가 배출하지 못하면 우리는 다음날 또 하나의 부고를 신문에서 찾아볼 수밖에 없었으리라.

“들어와, 들어오고…… 내 이야기를 들어줘. 제발. 미쳐버릴 것 같단 말이야.”

내가 살고 있는 집도 그렇게 쾌적한 편은 아니었지만, A의 집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집안엔 변변한 가구를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게 낡아있었다. 필시 주워온 가구임이 틀림없었다. 탁자며 의자며 소파며 각종 서랍장까지. 오래되고 버림받은 가구들의 퀘퀘한 냄새가 온 집의 방안을 떠돌았다. 나로선 굳이 앉고 싶지는 않았지만, A의 권유에 하는 수 없이 그나마 덜 더러워 보이는 자리에 앉는 것이 고작이었다.

A는 앉지 않았다. 대신 방 여기저기를 서성이며 두 팔을 휘저어 이상한 손짓을 했다.

“머릿속에 뭔가 있는 것 같아……. 꼭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들어있는 것처럼……. 어쩌면 내가……오늘 아무것도……먹지 못해서 그런 걸 지도 몰라. 난 병신이야…… 이상한 사람이라고…….”

그러더니 한쪽 벽에 걸려 있는 액자를 하나 냉큼 떼와서는 나에게 보여주었다. 거의 코에 닿을 듯 까지 보여주는 터라 무엇인지 알아보기까지 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이 방 안에서 유일하게 반짝반짝하게 윤이 나는 물건은 그 액자 하나였다. 액자에는 놀랄 정도로 말끔하게 차려입은 A가 있었다. A의 뒤로는 큰 공장이 보였고, 공장의 간판에는 ‘XX 성냥’이라는 큰 상호가 붙어있었다. 액자 속의 A는 커다란 미소를 지으며, 팔을 활짝 벌리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성냥 몇 박스 밖에 없어. 그들이…… 모든 걸 가져갔어. 한 개도 빼놓지 않고 말이야…… 침대보랑…… 숟가락까지도.”

A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더니 머리를 싸매고 울먹이기 시작했다.

“아직도 그들의 비웃음 소리가 들려. 낄낄 거리는 사람들 말이야.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엔 아무 말도 못 했던 사람들이……. 어디에 성냥을 쓰냐고……. 어디에…….”

나는 문득 더러운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성냥갑들을 발견했다. 담배에는 상호가 큼지막하게 박혀있었다. 상자는 관리가 잘 된 듯 보였지만,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 조금씩 삭아서 어딘가 낡은 유물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내 딸이 얼어 죽을 때 무얼 하고 있었냐고? 나도…… 나도 성냥을 팔고 있었어……아니, 나는 구걸을……구걸을 했지. 바로 옆 동네에서……. 길을 서성이면서 말했어. 도와달라고. 이러다……이러다 죽겠다고.”

A는 주저앉은 채로 낄낄 거리기 시작했다.

“딸 애가 거위 이야기 꺼냈을 때는 미쳐버리는 줄 알았어. 거위는커녕 쌀 한 톨도 없는데……. 나도 알아……. 안다고. 하지만 내가 딸아이한테 줄 수 있었던 건…… 매질 밖에 없었어. 성냥 몇 박스랑…….”

나는 가만히 있었다.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었다면, 조금 더 똑똑한 사람이었다면, 이 남자를 위로하기 위해, 혹은 교훈을 주기 위해 무어라고 말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우둔한 작가였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A는 그러더니 갑자기 실성한 것처럼 나를 노려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방금 전까지 실성한 듯 슬프게 웃던, 미칠 것 같다며 말하는 남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구석에까지 몰린 쥐의 눈동자였다. 절박하고,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위험한 눈동자 말이다. 그러고는 말했다.

“이봐……. 정말 미안해. 하지만…….”

남자의 섬찟한 목소리에 나는 긴장이 등골을 타고 오르는 것을 느꼈다.

“돈……. 돈을 좀 줘.”

하지만 A의 태도는 전혀 부탁을 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A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내게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나는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방어자세를 취했다. 내가 떨어지라고 소리쳤지만 A는 듣지 않았다.

“돈을 달라고!”

A는 이렇게 외치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A는 며칠을 굶은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힘이 세었다. 우리는 곧 업치락 뒤치락하며 방 안을 나뒹그렀다. A의 주먹이 내 뺨을 치자 진한 피 냄새가 콧속에 가득 찼다. 나도 A의 복부를 몇 차례 가격하고, 같이 넘어져 그나마 성한 가구였던 낡은 조립식 의자를 박살 내었다. A가 소리쳤다.

“이 개자식! 너도 똑같은 놈들이잖아! 너도 날 도와주지 않았잖아!”

잠시 몸이 떨어진 사이 A가 절규했다. A의 눈은 이제 완전히 미쳐버린 듯, 이상한 불꽃이 남실거렸다.

“똑똑히 기억해! 나는 다 기억하고 있다고! 개새끼들. 난 나를 스쳐간 씨발놈들을 다 기억해! 모피 입은 썅년들! 고급 양복을 입고 지나치는 씹새끼들! 나를 깔보는 놈들!”

나는 입술을 흐르는 피를 닦았다.

“하지만 너 같은 놈들이 가장 나빠! 같은 처지인 주제에 연민에 차서 자기 위로나 하고 자빠지는 개새끼들. 빌어먹을 종자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서! 뭘 안다고! 그냥 돈이나 달라고!”

하면서 다시 A는 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A의 돌격은 돌연 멈추고 말았다. 난데없이 어린아이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방안에 울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적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낡다 못해 여기저기 구멍이 난 내복을 몇 겹이나 덧 대입은 여자아이 하나가 문지방에서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오늘 아침에 발견된 성냥팔이 소녀보다 두 살은 더 어려 보였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집안 전체를 메웠다. 나는 침묵할 수밖에, 더러운 마룻바닥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울음소리 앞에서 바람이 슬레이트 지붕을 흔드는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A는 천천히 딸에게 다가가 쓰러지듯 무릎을 꿇었고…… 그대로 꼭 안아주었다. 하지만 소녀의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내 고막에 새기기라도 할 것처럼 부녀는 계속해서, 계속해서 울었다.

나는 어지러움과 공포를 동시에 느꼈다. 저기 서로를 껴안고 있는 부녀의 모습이 빙그르르 돌았다. 나는 더러운 소파에 모래성 무너지듯 앉았다. 탁자 위에 있는 성냥 몇 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내일이면…… 아니면 오늘 밤에라도 저 소녀가 성냥을 팔러 나가리라. 어제 얼어 죽은 언니를 대신해……. 자기 것이 아닌 신발을 신고, 지독히도 두꺼운 추위를 얇은 외투로 뚫어가며, 바구니에 담기는 거라곤 성냥 몇 갑과 연민과 경멸 밖에 없는 채로……. 그리고 아무것도 없이 천천히 사라지고…… 이런 식상한 소식에 질려버린 대중들은 다른 소식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그리고…….

나는 지갑에 있던 돈을 몽땅 서둘러 꺼내어 탁자에 던지듯 올려두었다. 얼마 정도 인지 세어 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리곤 탁자 위의 성냥 한 갑을 허겁지겁 내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아직도 울고 있는 부녀를 두고,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왔다.

 

집에 도착해 숨을 고르고, 다시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멍하니 성냥을 꺼내어 불을 그었다. 성냥 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새 해의 첫날에 일어난 일이었다.

 

 



삶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일들은 어딘가 무대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무대 위는 고요하고 평온하죠. 그저 말 없는 통계만이 몇 명이 미쳤고, 몇 양동이의 술을 마셔치웠고, 몇 명의 어린이가 영양실조로 죽었다며 저하하고 있죠...... 어쩌면 분명 그래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행복한 사람이 평안한 건 불행한 사람들이 말없이 자기 짐을 지는 덕분이라는 게 명백하니까요. 불행한 사람들이 침묵하지 않으면 행복이란 불가능하겠죠. 이게 전체적인 가설입니다. 만족을 느끼며 행복하게 사는 모든 인간의 문 뒤에 누군가 작은 망치를 들고 서서 계속 두드려대며, 이 세상에는 불행한 인간들이 있고, 그가 지금 아무리 행복해도 삶이 언젠가는 자기 발톱을 드러내 병, 가난, 상실 등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이고, 그때가 되면 지금 그가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듯이, 아무도 그의 불행을 보거나 들을 수 없게 될 거란 점을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망치를 든 사람은 없고, 행복한 사람은 자기 식대로 살아가는 거죠. 사시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듯 일상의 소소한 걱정거리들이 그를 조금은 동요시키겠지만, 모든 게 아무런 문제 없이 잘 흘러가죠......

- 안톤 체호프, 산딸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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