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심바 이야기

by 엔데
얼룩 고양이 심바는 죽음의 여행을 갈 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물론 '심바'라는 이름은 인간들이 그에게 멋대로 붙여준 이름이었다. 인간들은 항상 고양이의 의사를 묻지 않은 채 듣기에도 끔찍한 이름을 붙여댄다. 예를 들어 나비나 마리, 야옹이, 삼색이, 유키 같은 듣기에도 혐오스러운 이름을 제멋대로 붙여놓은 다음, 귀털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불러대는 것이다. 자긍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집고양이들은 그런 이름을 참고 살지만, 긍지 높은 들고양이들은 인간들이 멋대로 붙여놓은 이름을 거부한다. 만약 당신이 담장 위를 걸어 다니는 까만 고양이를 불렀을 때, 고양이가 당신을 무시하며 그냥 갈 길을 간다면 대게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 끔찍한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하지만 얼룩 고양이 심바는 인간들이 자신에게 붙여놓은 이름을 꽤나 마음에 들어했다. 그래서 종종 다른 마을 고양이들에게 자기소개를 할 때에도 심바라는 이름을 종종 쓰곤 했다. 때문에 심바는 고양이들 사이에서 살짝 이상한 괴짜로 소문이 나있었다.


물론 심바에게는 더 멋진 이름이 있었다. 고양이가 고양이 사회에서 불리는 이름이다. 집고양이를 제외한 모든 고양이들은 이 이름을 썼다. 심바는 '가을 플라타너스 이파리'라는 점잖고 세련된 이름을 갖고 있었다. 참고로 위에서 소개된 까만 고양이는 '재빠른 참새'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이름처럼 대단히 민첩하고, 참새를 잘 잡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이름이 있다. 쥐들의 왕과 함께 싸운 전우에게도, 꼬리가 아름다운 아내 고양이 한 테도, 심지어는 자신을 똑 빼닮은 자식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비밀의 이름이다. 한 밤중에 지붕이나 담장 위의 고양이가 꼼짝 않고 가만히 앉아서 달을 쳐다보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필시 그 이름을 천천히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혼자 그 이름을 천천히, 빠르게, 낮은 음으로, 높은 음으로, 아무도 듣지 못하는 작은 목소리로 작게 말하면서 곱씹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에 대해 혼자 명상에 잠긴다.


물론 이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이름은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모든 자유로운 고양이들은 그 이름을 얻기 위해 일생일대의 모험을 해야 했다. 그냥 어느 날 깨닫게 되는 것이다. 모험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런 고양이들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훌쩍 다른 곳으로 모험을 떠난다. 누구한테도 목적지를 알려주어서도 안되고, 동행도 있으면 안된다. 다른 고양이들은 그 신성한 여행을 존중해주며, 어떠한 큰 일을 겪고 있던 그가 모험을 가는 것을 막지 않는다.


심바도 엄청난 모험을 했었고,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물론 그 모험이 어떠했는지 아는 고양이는 아무도 없었다. 세계의 중심에 갔다 왔을 수도 있고, 가장 깊은 바다에 다녀왔을 수도 있다. 아니면 가장 큰 코끼리를 사냥했을 수도 있다. 다른 고양이들은 살짝 잘려진 귀와 발톱에 나있는 흠집, 등의 상처 등을 보고 감히 추측만 할 뿐이었다. 그 모험에 대해 묻는 것은 대단한 실례이기 때문에, 무성한 추측만 나돌았다.


그렇게 모든 자유로운 고양이는 세 가지 이름을 갖고 산다. 인간들이 부르는 이름, 고양이가 부르는 이름, 그리고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이름. 그리고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라야 진정한 고양이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때부터 비로소 고양이가 고양이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와 수행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이름이 있는 고양이라야 혼자서 돌 담벼락 위에서 잠드는 것, 개울에서 생선을 잡는 것 등이 허락된다. 또 매달 보름달 아래서 열리는 고양이 집회에 반드시 참석해야 하며, 파수꾼으로서 영역을 보호할 수 있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물론 결혼이 가능한 것도 그 이름을 받은 후에야 가능하다.


심바는 자신이 태어나고 2년째에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이름을 위한 신성한 모험을 했고, 그 이후로 열다섯 번의 봄을 더 맞으면서 고양이 사회의 훌륭한 일원으로서 역할을 다했다. 심바와 그의 절친한 동료인 '부드러운 나무껍질', '무지갯빛 돌'이 하수구 쥐의 왕과 맞서 싸워 이긴 이야기는 고양이 사회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였다. 또 아름답고 윤기 나는 털을 가진 '은회색 잠자리'를 아내로 맞아 여러 명의 자식까지 두었다. 그의 독특한 성격 때문에 수락하지는 않았지만, 한때는 고양이 집회의 '첫 번째 고양이'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었다. 즉, 심바는 고양이로서 꽤 성공한 삶을 살았으며, 그 자신도 자신의 삶에 대해 굉장히 만족하고 있었다.


그리고 볕이 따사로운 어느 오후, 심바는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오고 있으며, 어서 죽음의 여행을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자유로운 고양이가 그러하듯이, 죽음을 맞이한 고양이는 죽음의 여행을 떠나야 했다. 이 죽음의 여행에서 고양이는 아무에도 알려주지 않는 이름을 반납하고, 하늘의 별이 된다. 이 여행 또한 이름을 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갑작스러운 예감에서 시작한다. 죽음의 여행을 떠나는 고양이는 먼저 자신이 사랑했던 모든 고양이들과 몇몇 인간, 자주 가는 담벼락, 심지어는 자신과 싸웠던 쥐들에게 까지 작별인사를 전한다. 그때 다른 고양이들은 여행을 떠나는 고양이에게 작별의 키스를 건네주며 축하한다. 하늘의 별이 되는 것은 굉장히 축하할 만한 일이기 때문에, 아무도 슬퍼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아쉬움에 고양이 집회에서 그를 위해 노래를 불러준다. 굉장히 아름다운 노래이지만, 글로 옮기기에는 인간의 언어는 너무나 보잘것없기 때문에 여기서 옮기지는 않겠다.


그렇게 모든 이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나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여행을 떠난다. 무슨 여행을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여행의 마지막에 고양이는 자신의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는 이름을 다시 반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름이 빠져나간 몸은 사라지고 두 눈만 남아 하늘의 별이 된다.


심바도 무수한 고양이들의 축복 속에 죽음의 여행을 떠났다. 심오하고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그 마지막 여행에서 심바는 하늘을 나는 연어와 만났고, 만년에 한 번씩 핀다는 연꽃의 냄새를 맡았으며, 바람의 신을 만나 저녁을 함께했다. 그리고 여정의 마지막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나무 위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죽음을 준비했다. 푹신한 잎을 깔아 나뭇가지 위에 자리를 만들고,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죽음이 천천히 심바에게 다가왔다. 죽음은 심바를 어루만져 주었고, 심바는 가르랑거리는 기분 좋은 소리를 내었다. 죽음이 물었다.


"네 이름은 무엇이니?"


그리고 삼바는 자신의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이름을 죽음에게 말해주었다. 죽음은 그 이름을 손에 조심스럽게 들고, 이름에 키스를 한 다음, 그것을 바람에 날려 보냈다. 그 이름은 아마 다른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이름을 찾는 모험을 하는 고양이에게 전해질 것이다. 자신의 이름이 바람에 실려가는 것을 본 심바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죽음이 옆에서 심바를 위한 노래를 불러주었다. 태초부터 전해진 그 따듯한 노래에 심바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은 다시 떠지지 않았고, 심바의 몸은 한 줌의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다만 죽음은 심바의 눈을 남겨두었고, 그것을 하늘에 던져서 별로 만들었다.


지금도 밤 하늘에는 심바의 별이 떠있다. 물론 인간들은 대게 멍청하기 때문에 그것을 잘 알아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전 08화관찰,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