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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군 Nov 29. 2015

영화에 대한 짧은 고백

 제 고향은 대전입니다. 수능이 끝난 후 “서태지 콘서트도 열리지 않는 대전에선 살 수 없다!!”며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지금부터 들려드리고자 하는 이야기는 2005년, 그러니까 월세와 교통비를 포함하여 한 달 생활비가 288,000원이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집에 갈 차비를 제외하면 제 주머니에 있는 돈은 고작 천 원이더군요. 물론 저녁은 먹기 전이었고요. 집에 가기 전에 김밥이라도 한 줄  사 먹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지금은 폐간된 필름 2.0이라는 영화잡지가 제 눈에 띄었습니다. 잡지의 표지에 적혀있던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천 원뿐이었던 제 저녁 값을 바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얼마간의 내적 갈등을 겪은 후, 저는 필름 2.0을 즐겁게 읽으며 집에 돌아갔더랬죠. 언젠가부터 밥은 굶어도 극장은 가고, 영화 잡지는 사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런저런 일정에 치여 일주일 이상 영화를 보지 못했을 때는, 걸신들린 사람처럼 하루에 2~3편씩 영화를 몰아보기도 했죠.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누구에게나 구원은 필요하죠. 제 경우에는 사랑을 제외한다면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영화는 저를 영원히 깨지 않길 바라는 꿈속으로 데려다 주며, 제가 외면해선 안 될 현실을 직면시켜주기도 하며, 온갖 희로애락을 선사해주기도 합니다. 어쩌면 영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영화가 제 구원일지도 모르겠네요.  


 얼마 전 지금까지 제가 봤던 영화들의 수를 어림잡아보니 1,400편이 조금 넘었습니다. 이 적지 않는 수의 영화들 중에서 제가 사랑에 빠지는 영화를 구분 짓자면 그 자체로 압도되어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영화, 영원히 이 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계속될 영화 속 인물들의 삶을 응원하게 되는 영화,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겠네요. 이렇게 제가 사랑하는 영화들, 그리고 그 영화의 수만큼 쌓인 추억들을 나누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랑한 영화들을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랑하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네요.


덧.

실험주의보에 기고한 글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회사생활이  계속될수록 영화에 대한 열정도 조금씩 식어가는 것만 같아 안타깝습니다. 뜨거운 사랑이 지난 후에 찾아오는 미지근한 안정감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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