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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끗 Mar 14. 2020

여태 가까웠다 해서 앞으로 가까워야만 하는 게 아니다

언젠가 인생의 고민을 하는 친구에게 내가 생각하는 최선을 말해줬는데, 그는 내가 매사에 너무 진지하다며 비아냥 거렸다. 그 말에 담겨있던 나의 가치관도 통째로 비웃음을 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진지한 고민이기에, 진지하게 성심성의껏 답했는데.


그가 잘 되길 바라는 진심을 가득 담아, 나의 아픔까지 밝히며 용기 내어 전해준 말이었는데. 

그에게 내 답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말에 담았던, 나의 아픈 경험과 그 고통을 옆에서 직접 지켜봤기에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그것에 관해 너무나도 쉽고 신랄하게, 비아냥 거리는 말을 했다는 게 꽤나 충격적이었다.


그 친구에 대한 실망감과 배신감에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눈물이 날 뻔했지만, 꾹꾹 참았다.

적당히 아팠으면 지기 싫어서 톡 쏘아붙였을 텐데, 너무 아프니까 아무런 말도 안 나오더라.


한 달 정도 충격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그 친구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한 건지, 아니면 정말로 몰랐던 것인지 나를 평소와 같이 대했다.

하지만 한번 떠난 마음이 잘 돌아오지 않더라.


그 친구의 말은 무례했다. 매우 무례했고 날카롭게 나의 가슴을 후벼 팠다.


하지만 나의 아픔에 대해 비아냥 거릴 만큼, 그 정도의 마음만 가지고 있던 친구에게 나의 마음을 모두 내어준 나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가 내게 여러 번 비슷하게 행동한 것에 대해 선을 제대로 긋지 못하고 묵인해 준 것도 나고, 그때 당시에 아무 말도 못 한 것도 나다. 


그 말에 휘둘려 준 것은 나고, 그가 주도권을 잡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며 그에게 목을 매면서 끌려다닌 것도 나다. 나를 잘 모르는 타인에게는 만만히 보이지 않도록 행동하는 법을 앎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리석게도 그가 내게 가까운 사람이라는 이유로 여태 눈을 감고 넘어갔다. 


어쩌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허용을 한 것은 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 라는 고민이 생겼다.


그 친구에게 당장 찾아가 화를 내고, 똑같이 비아냥 대기보다는 조금 더 나은 방법을 택하고 싶었다. 

분노의 마음으로 무언갈 해결하려고 했다가는, 분명 오랜 시간이 지나 나 스스로가 후회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랜 시간 나의 곁에 머물러 준, 소중한 사람 중 하나였으니 그것에 대한 예의는 지키고 싶었다.

그리고 그 외로는 또 그 친구만의 장점도 있고 고마운 마음도 있으니 완전히 연을 끊지는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를 미워하고 분노를 갖고 살기보다는, 잔잔하고 고요함을 찾기 원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 비난의 말이 내 마음에 닿지 않을 정도로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주변 그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고 조용히 내 마음속으로 선을 그었다.


전에는 내 인생에서 손꼽힐 정도로 소중한 사람이었다면 지금은 지인으로 관계를 유지하기로 했다.

내가 다치지 않을 정도이지만, 또 연이 완전히 끊기지는 않을 정도까지만 허용하기로 했다.


내가 달라지자, 처음에 친구는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더 이상 그가 원하는 대로 나는 끌려다니지 않았고 내 의견을 예의 있지만 솔직하게 표출했다.

과도하게 그의 눈치를 보며 그에게 맞추지 않고, 내 페이스를 찾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속에서 거리를 두니, 그를 잃음을 통해 크게 잃을 게 없다는 생각에 관계가 더 편해졌다.

만약 그에게 실망한 채 아예 연을 끊어버렸다면 그 상처가 나를 오랫동안 괴롭혔을 것 같은데, 계속 마주하니까 점점 더 나아졌다.

그리고 그와의 관계가 어느 정도까지만 이어질지 선을 긋고 보니, 오히려 그를 향한 분노는 사그라들고 마음이 더 너그러워졌다. 


그는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전과 같이 내게 무례한 말을 던져도 그것을 소중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니, 그 말은 내 마음에 생채기를 더 이상 내지 못했다. 내가 마음에 거리를 둔 만큼, 그의 무례한 말은 내 마음에 닿기도 전에 공기 중에 흩어졌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끌려 다니지 않고, 휘둘리지도 않으니 그는 나를 깔보는 것에 대한 흥미를 서서히 잃어가고 나만 눈치 보았던 관계에서 그도 슬슬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도 결국 선을 긋고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복수심에 싸대기라도 한 번 갈기거나 그 친구가 후회하며 내게 사과하는, 그런 사이다 엔딩은 아니다. 

하지만 밋밋하게도 우리는 여전히 관계를 유지하며 지내고 있다.

또 우리 사이에는 적당한 선이 유지되고 있다.


그만큼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거리감이 생겼지만, 의외로 이게 훨씬 더 편하고 그 사람과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예전처럼 자주 만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모두 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를 미워하지 않고 그를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해 주며 나쁜 마음 없이, 즐거운 만남을 가질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그가 나를 비아냥댔던 순간을 다시 떠올리면 조금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더 이상 그를 향한 분노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제는 그도 어느 정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그런 관점으로 보는 사람이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 그때 당시에 그의 눈에 내가 아니꼬워 보이는 부분이 있었으리라 생각하고 넘겨버린다.


나와 다른 사람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완벽하지 않기에 분명히 흠이 있을 것이고.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내 마음대로 안 돼서 속상하긴 하지만, 이건 쿨하게 인정하자. 사실이니까.


가까운 이를 잃는다는 공포 때문에 선을 긋지 못하고 끙끙 앓기만 했던 지난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지금 매우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 오히려 속앓이 하던 전보다 훨씬 나은 마음을 가졌다.

가까운 사람을 내 인생에서 아예 잃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도, 선을 긋고서도 충분히 좋은 지인으로 알고 지낼 수 있다.

어쩌면 내가 그 관계에 절박하게 매달렸기 때문에, 상대방도 그게 원래 내 성격인 줄 알고 당연하게 무례하게 행동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의 무례함은 정당화될 수 없지만, 그것을 누군가가 그에게 말을 해서 고칠 수 있었더라면 아마 그 사람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나의 태도일 뿐.


여태까지 가까이 지내온 세월이 아까워서 상처를 가득 받으면서도 그를 붙잡고 있다면, 앞으로 다가올 세월이 아까워서라도 내 손에서 그를 적당히 느슨하게 놓아주자. 여태 꾸준히 상처 받아 왔던 내 마음이 한순간에 강철로 변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 변할 가능성이 적은 그 사람을 붙들고 상처 받지 않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아예 떠나보낼 필요도, 그렇다고 괴로워하면서 그것을 꽉 쥐고 있을 필요도 없다.

그냥 가끔은 적당한 거리가 필요할 뿐.

지나간 세월을 아까워하지 말고, 앞으로 다가올 세월을 아까워하며 좋은 결정을 내리는 게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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