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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끗 Mar 13. 2021

어딘가 속하려고 애쓰기보다 나의 둥지를 만들어 나가자

언젠가부터 소속감이 굉장히 중요하게 다가온 때가 있었다.

어딘가에 속하고 싶었고 눈에 보이는 무언가로 내가 정의 내려졌으면 하는 때가 있었다.

내가 어울리는 사람들을 통해 나 스스로를 정의 내렸을 때.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소속감을 원하면 원할수록 나는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하고 붕 뜬 느낌을 받고는 했었다.

나를 소속시켜줄 사람들을 향한 기대치가 한없이 높아졌고, 그 기대치에 못 미치게 사람들이 나를 대할 때 내 기분은 곤두박질쳤다.

사람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오락가락하고는 했다.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갈망 속에는 나 스스로를 투명인간 취급한다는 증거가 가득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내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그리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기에 나는 외부에서 오는 무언가로 나를 정의 내리기 원했다.

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나를 직면하는 것보다 다른 곳에 관심을 두고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이 나라고 믿으며 연기하며 사는 게 당장은 쉬웠으니.


나를 대접하고 나의 내면을 가꾸는 대신 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곳에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

다른 사람에게 체면치레를 하기 위해, 아니면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비싼 밥값은 턱턱 내면서도 정작 나는 내 자신에게 그 십분의 일 돈도 아까워할 정도로 스스로를 돌볼 줄 몰랐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나는 불안해졌고, 텅텅 빈 것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놈의 소속감이라는 건 어딘가 땅을 딛고 속했다 싶으면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나는 그저 어둠 속에 홀로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 스스로가 속할 수 있는 곳을 내가 만들어 보자고.

절대 변하지 않을, 튼튼해서 긴 시간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둥지를 만들어 보자고.


쉽지는 않았다.

그리고 단기간에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새가 나뭇가지 하나하나 정성스레 골라 천천히 둥지를 만들어 가듯, 나는 서서히 소속할 곳을 찾는 눈과 마음을 돌려 내 보금자리를 꾸렸다.


그렇게 천천히 나의 마음이 머물 곳을 만들어 나가자 내 마음은 안정이 됐고 그제야 누군가를 품을 수도 또 나 스스로도 편히 쉴 수도 있게 됐다.


어딘가에 속하기 위해 발버둥 치지 않아도 편히 속할 수 있는 곳이 있으니 내가 아닌 누군가를 연기하느라 괴리감에 괴로워할 일도 없었다.

또 내가 아닌 모습을 연기하며 내 진짜 모습을 들켜버릴까 전전긍긍하며 두려워하던 모습도 사라졌다.


예전의 나와 같은 누군가가 천천히 모양을 갖춰가는 내 둥지로 다가오면 그가 편히 쉬어갈 수 있도록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었다.

전에 홀로 괴로워하며 외로움에 눈물짓던 나를 너무나도 잘 알기에 그렇게 했다.

그들이 떠나가도 예전만큼 스스로를 경멸하거나 밀어붙이지 않았다.

왜 더 완벽하게 굴지 못했냐고, 그들은 나의 부족함을 보고 질려서 떠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자신만의 인생을 살러 떠났을 뿐이고 나는 이곳에 편히 머물면 되니까.

나는 내 내면에 지어진 보금자리를 예쁘게 가꾸면 될 뿐이니까.


물론 지금도 옛 습관이 남아 불쑥불쑥 옛날과 같은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차갑게 떠나가거나 내 맘 같지 않은 상대방의 마음을 볼 때 아예 아프지 않아 평온하게 웃을 수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생각의 굴레 정도는 벗고 그것을 마음의 짐으로 떠안고 끙끙 앓지 않고 그저 흘려보내줄 정도의 여유는 생겼다.

이런 걸 보니 아직 나의 둥지는 지어져 가는 중인가 보다.


언젠가 내 마음속 둥지를 완성해 수많은 이들이 머물 수 있고 안정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포근하게 누군가가 속함을 느끼며 쉬어가며 또 자신만의 둥지를 만들 수 있는 힘을 얻어갈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내 마음이 튼튼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지어져 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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