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를 하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깜깜한 밤에 잠자리에 들려다 문득 과거의 일이 생각나고는 한다.
불청객처럼 불쑥 찾아와 내 머릿속을 헤집고 어지럽혀 놓는다.
그렇게 떠오르는 기억은 열에는 아홉 수치스럽거나 실수했던 기억이다.
누군가에게 말실수를 했거나 어떤 말에 멋있게 받아치지 못하고 어버버 거렸던 기억과 묶인 수치심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러다 보면 홀로 나 스스로를 향해 ‘이런 등신’ 같은 말을 한다거나 내가 왜 그랬을까 자책한다.
그리고 밀려오는 우울함에 침전된다.
그래, 과거가 현재의 나를 만든 건 사실이다.
차곡차곡 쌓여온 내 시간 속, 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분명 한 과거의 조각은 현재의 나를 이루고 있는 일부이며 지금의 나에게서 떼어놓을 수 없다.
그런 과거가 쌓이고 쌓여 지금의 내가 있으니.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하는 사실은 하나 더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기억 속 나를 현재로 데려와 마치 내가 과거 속 나인 것처럼 쪼그라들어 살 필요도 없단 이야기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나는 서툴렀고, 어렸고, 실수했다.
물론 그 실수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것이라면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절대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쏟아야겠지만.
과거의 경험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지만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다.
분명 실수와 수치스러운 경험을 통해 나는 아주 미세하게나마 바뀌었다.
그러니 과거의 기억 속 나를 끄집어내어 그게 지금의 나인 것처럼 움츠러들지는 말자.
과거를 지우거나 배제시킬 수는 없다.
그러니 따스하게 어둡고 부끄러운 과거를 조금 안아보자.
내가 조금 초라했더라도, 그 당시 내가 좀 수치를 느꼈다 할지라도 지금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니니 조금은 의연해져 보자.
과거를 수정할 수 있는 건 내 영역이 아니며 또 그렇게 할 수 없기에 그냥 인정하자.
수용하고 나아가자.
‘예전엔 그랬었지...’라며 피식 웃고 넘어가도 되고 마치 제삼자가 된 것처럼 나를 웃기는 사람이라 생각해도 좋다.
뭐든 좋으니, 현재에 과거를 너무 깊게는 끌어오지 말자.
한순간 가벼이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그렇게 가볍게 기억의 자락을 놓아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