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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끗 Jul 22. 2021

나는 착하다,라고 자기 위안하지 말자

어렸을 적부터 나는 ‘착하다’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다.

세 남매 중 둘째인 탓일까. 아니면 태생적으로 온순한 성격을 가지고 태어나서일까.

어렸을 적부터 나는 부모님의 뜻을 크게 거스른 적이 없었고, 대체적으로 타인에게도 그랬다.


호불호가 강하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고는 했다.

그러니 주변 사람들은 모두 날 착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 칭찬이 듣기 싫지 않았고, 큰 특징 없이 자라온 나의 정체성의 일부가 되어주었다.

일부라기 보단 전부에 가까웠지만.


그렇게 나는 착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20대 중반까지 살아왔다.


되돌아보면 무의식 중에 이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나는 내가 원하지 않는 행동들을 참 많이도 했다.

마찰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내 의견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떤 비난을 받아도 그냥 헤헤, 웃고 말았다.

항상 선택권을 상대에게 주었다.


그게 배려라고 생각했고, 착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일종의 회피였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모든 행동은 내가 착한 사람으로 비치기 위한 이기심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순간의 억울함을 참아 넘기고 마찰을 피해도 내 마음속 감정은 날뛰고 있었다.

그렇게 앞에서 삭히고 나면 나는 엉뚱한 곳, 대체적으로 내게 가까운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거나 아니면 나 스스로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렵게 지켜온 착한 사람이라는 명성을 위협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노발대발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웃기지만, ‘나는 착한데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걸 보니 너는 나쁘구나’라는 생각이 무의식 중에 깔려있었다.

마치 내가 절대 선이라도 된냥 굴었던 것이다.


내 타고난 성향과는 좀 다른, 힘겹게 지켜온 인식에 나는 집착했다.

모든 걸 바쳐 공든 탑을 쌓았기에 그게 위협받거나 무너지는 것에 대한 극도의 공포가 내재되어 있던 것 같다.


물론 태생적으로 앞뒤 계산하지 않고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와 선한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정말 존경하고 그런 선함을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결코 그렇지 않았고, 그저 그런 껍데기만 추구했을 뿐이었기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우린 모두에게 착한 사람으로 비칠 수 없다.

각자가 생각하는 선행에 관한 기준이 다르기에.


때로는 선을 위해 싸울 줄도 알아야 하고 마찰을 일으킬 줄 알아야 뜻을 이뤄낼 수 있다.

내 기준 속 착한 뜻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와 맞서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틀린 것을 틀렸다 말하고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내가 가진 힘을 사용할 줄 알 때 선행이 진가를 보이는 법이다.


그래서 모두에게 착한 사람이 되는 것에 목매는 것을 멈췄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이에게 착한 사람이라 평가받는 것에 목매는 것을 멈췄다.

내가 언성 높여 내가 생각하는 선함을 지켜낸다면 그것만으로도 됐다.

그 과정 속 누군가가 내가 악이라 손가락질을 한다 할지라도 지금은 그 뜻에 확신이 있기에 덜 흔들린다.

내가 절대 선이 아닐지라도, 지금 내가 최선을 다해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싸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다른사람으로부터 들은 착하다, 라는 말로 비겁하게 내 회피하는 모습을 정당화하는 것을 멈춰야겠다.

내 안에서 스스로 선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울 때까지 나는 싸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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