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긍정 회로를 돌려도 기분이 회복되지 않는 날이 있다.
이성으로, 머리로는 내 상황을 이해하지만 마음이 바닥까지 가라앉은 날.
여태 잘 버티면서 달려왔는데, 그게 한순간에 물거품이 돼버리는 기분에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 애를 쓰지만 어렵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오늘은 조금 힘 빠지는 소리를 하게 될 것 같다.
이런 나의 글을 읽고 누군가가 혼자가 아니구나, 라며 위로를 받을까 해서 세세하게 기록하려 한다.
세상만사 머리로 이해하려면 모두 이해가 가능하다.
상대의 상황에 대해 공감도 매우 쉽게 가능하다.
하지만 오늘은 그 아무것도 이해하고 싶지 않다.
그저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펑펑 울고 싶다.
나 혼자만 힘든 것 같아 너무 속상하다.
물론 모두 웃는 얼굴 뒤에는 남모를 사정을 갖고 저마다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만큼은 타인을 더는 헤아리고 싶지 않다.
모든 걸 다 통달한 척 글을 쓰지만 주기적으로 불쑥불쑥 나타나는, 아무도 모르는 나도 있다.
무조건적인 이해만 바라는, 그런 어린아이 같은 내가 있다.
삶이 때때로 벅차게 느껴져 절망 속에 허덕이며 어쩔 줄 몰라 그저 누군가의 따스한 품만 바라는 나.
어렸을 적엔 이런 마음을 주변인들에게 몽땅 털어놓고 위로받고 쉽게 털어버렸던 것 같은데 지금은 꾹꾹 참고 삼킨다.
저마다의 버거운 짐을 지고 달리는 이들에게 내 짐까지 맡기는 건 너무한 것 같아서 가족에게까지도 괜찮은 척하는 게 습관이 됐다.
평소에는 웃고 넘기며 더 나은 내일이 있겠지,라고 쉽게 털어버리고 말았는데.
오늘은 삶이 참 버겁다.
삶이 참 쓰게만 느껴진다.
언제까지 고생이 이어지는 건지.
언제까지 나는 이렇게 이해하려 노력하며 살아야 하는 건지.
내가 무조건 적으로 기댈 곳은 평생 없는 건가, 라는 생각까지 든다.
분명 내 주변에는 따스한 사람도 많은데, 무언가에 토라져 있는 어린아이처럼 모든 걸 거부하고 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유언장에 인생은 일장춘몽이라 쓰셨다.
80 중반의 나이에 돌아가시면서 잠시 이 세상에 소풍을 다니러 왔다 간다 느껴진다 하셨다.
그렇게 봄의 꿈처럼, 가볍고 유쾌하게 살다 가고 싶은데.
지금 이렇게 씁쓸한 것도 나중에는 달콤한 봄의 꿈이 되려나.
다들 이렇게 씁쓸함을 감추고 살아가고 있을까?
아님 간혹 이렇게 인생의 쓴맛을 맛보면서도 다른 맛으로 잊으며 살아가고 있는 건가.
한바탕 울면서 베개를 다 적시고 잠을 자고 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져 있겠지.
내일이면 따스히 내리쬐이는 햇살을 보며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웃을 수 있겠지.
이런 변덕스러운 내가 싫으면서도 씁쓸함을 매일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주어진 망각에 감사하겠지.
상황은 뭐하나 나아지는 게 없어도, 내 마음은 조금 나아져 있겠지.
긍정을 불어넣으려 애를 써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구는 얄궂은 마음이 짜증 나면서도, 또 한순간 변덕을 부려 사소한 것 하나에 미소 짓게 만드는 내 마음에 기대게 된다.
내일이면 다들 이렇게 살아가겠거니, 하며 결국 난 또 자리에서 일어나 하루를 살아낼 것을 안다.
또다시 나를 사랑하게 될 줄 안다.
또다시 삶에 희망을 걸게 될 나임을 안다.
미련해 보여도 결국 그곳에 닿을 나임을.
맛있는 커피 한잔 같은 사소한 것 때문에 인생은 즐겁다라고 외치게 될 것임을 안다.
짧은 글 하나에 마음을 쏟아놓고 나니 벌써 눈물 지었던 게 멎었다.
그래, 이렇게 가볍게 날아갈 마음이었다.
결국 이렇게 스스로 위로하고 치유하고 나아질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