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랑끗 Feb 15. 2022

서운함은 잠시

서운함은 잠시다.

그 깊이가 어떻든지, 서운함은 정말 잠깐이다.

찰나의 서운함 때문에 어떤 결정을 내리는 건 미련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감정에 치우쳐 내리는 결정은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또 처리되지 않은 감정을 안고서 섣불리 결정을 내릴 뻔했다.


무엇을 하느니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 마음속에 남겨진 어느 결론만 가지고 가기로 해서 천만다행이다.

만약에 서운함을 고스란히 안은 채로 무언가 결정 내렸었다면 지금의 나는 많이 후회했을 것이다.


짙고 깊었던 서운함은, 도저히 지울 수 없을 것 같던 서운함은 이제 희미해져 그저 얕고 힘없는 울림만 되어버렸다.

아무런 형체가 없어서 나한테 영향 주지 못하는 그런 의미 없는 울림 말이다.

이렇게 희미한 울림이 될 줄 알았으면 그때 서운함에 덜 젖어들 것을.

나는 왜 괴로워하고, 몸부림치고, 눈물 흘리며 아파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강렬했던 감정이라도 다 지나간다.

변하고 옅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서운함에 치우쳐 섣불리 결정을 내리는 걸 지양하자.

감정을 꼭꼭 씹어 소화한 후 어떤 결정을 내려도 늦지 않으니 서운함이 생생할 때 속단하고 행동하지 말자.

대다수의 것은 물 흐르듯 그냥 흘러 내려가 버린다.

흘러가지 못하고 고여 있는 서운함이 보일 때, 그때 고민을 시작해도 늦지 않으니.


서운함은 잠시지만 내가 내린 행동의 결과와 책임은 그 여파가 사라질 때까지 오롯이 나의 몫이다.

그러니 내 감정을 건강하게 소화시켜낼 때까지 어떤 결정을 미뤄도 괜찮다.


서운함이 내 마음을 할퀴고 지나갔을지라도, 그게 상처가 되지 않았다면 그냥 놓아줘도 괜찮다.

그걸 안고서 끙끙 앓는 시간이 더 아까울 지경이니 말이다.

날 서운하게 만든 상대는 정작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다지 악의가 없었을 것이고.


그러니 힘껏 아파하고 곱씹어 보았다면 그냥 조금은 흘려보내 주자.

내 맘 같지 않은 그를 잠시 힘껏 미워했다 할지라도, 그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은 희미해질 것이고 또 그를 덮어버릴 좋은 일이 다가올 수도.

내 서운함의 원흉이 됐던 그를 통해서 말이다.


그러니 서운함에 휘말려 섣불리 결정 내리지 말자. 조금 기다리고 소화시키고 난 후 남은 것에 대해 고민을 시작해도 된다.

희미한 메아리처럼 불쑥 서운했던 기억이 떠올라도 ‘그땐 그랬구나’라며 피식 웃고 지나갈 날이 찾아오기도 하니까 말이다.

만약 그때 날 서운하게 만든 누군가와 연을 끊었더라면 참 아쉬웠을 나날을 마주하게도 되니 말이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내게 진한 서운함을 남겼을 때, 일단 서운함은 잠시라는 말을 되뇌어보자.

서운함이 상처가 되어 오래오래 머물게 될 것 같으면 그때 결정을 내려도 된다.

그러니까 오늘 마음속 깊은 서운함이 있을지라도, 잠깐만 떠올리자.

서운함은 잠시지만 내 결정은 오랜 책임을 남기게 될 거라고.




작가의 이전글 부딪히기에 깎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