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형 여자, 에이형 남자

최악의 궁합이라고요? 그렇지 않아요

by 랑끗

한국 사람이 유독 맹신하는 혈액형론.

온 세상 사람을 단 네 가지의 성격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그런.... 놀라운 이론이다.

수혈할 때나 필요한 게 혈액형이지, 그것으로 성격을 논할 수 없다는 걸 너무나도 정확히 알지만, 그래도 재미로라도 야기하게 되는 게 혈액형 별 성격이다.


연애하던 시절, 재미로 남편과 나의 혈액형 궁합을 찾아본 적이 있다.

그 결과는 최악이었다.


그것도 보통 최악이 아니라, 최악의 궁합 1위를 차지했다.

나는 B형, 우리 남편은 A형이다.


혈액형 따라 성격이 결정된다는 미신을 완전히 믿지는 않지만 (이라고 말하고 은근히 믿는다고 말한다), 인터넷에 출처도 없이 떠도는 글에 기대자면 나는 전형적인 B형 스타일인 것 같다.

변덕이 심하고, 제멋대로고, 속내가 훤히 다 드러나는.


그리고 남편은 인정하지 않지만, 남편도 전형적인 A형 스타일이다 (심지어 내가 남편을 처음 봤을 때부터 A형인 것을 확신할 수 있을 정도다).

진중하고, 이성적이고, 때로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깊은 마음 때문에 행동이 조금 다르게 나오는.


어떤 사람의 우스갯소리에 따르면 B형은 오. 이. 지다. 오만하고, 이기적이고, 지랄 맞고.

A형은 소. 세. 지라고 한다. 소심하고, 세심하고, 지랄 맞고.


음, 내가 지랄 맞다는 부분은 어느 정도 인정.


재미로 누군가에게 우리의 혈액형의 관해 물으면 우리를 잘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맞췄다.

(이런 걸 보면, 혈액형론이 꽤 신빙성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만큼 우리는 각 혈액형을 대표해도 될 만큼, 성격이 이렇다.



혈액형론에 기대자면, 우리는 그만큼 특색이 강한 B형과 A형이다.

그래서 그 궁합 결과에 따르자면 최악일 수밖에 없는 조합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잘 맞는다.

달라서 싸우기도 하지만, 달라서 좋은 점도 훨씬 많다.


내 제멋대로 구는 성격이 발동해, 무언가 충동적으로 결정하려고 할 때 남편은 옆에서 내게 조심스럽게 브레이크를 걸어준다. 그리고 남편이 누군가에게 쌓였던 게 폭발해서 감정적으로 폭주할 때 나는 조심스럽게 옆에서 브레이크를 건다.


이건 단편적인 예지만, 우리는 서로를 위해 브레이크를 걸어줄 때가 수 없이 많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나의 부족함을 인정해서일까.

그렇게 브레이크를 걸어줄 때, 내 심기를 건드린다기보다는 오히려 내가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해 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렇게 브레이크를 걸어서 손해 볼 상황을 피하기도 한다. 그런 이득을 많이 보았기에, 우리는 상대방이 브레이크를 걸면 조금 신뢰하게 된 게 있는 것 같다.


내가 전형적인 B형이고 우리 남편이 전형적인 A형이라 가장 큰 장점은 이것이다.

서로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 달라서 좋다.


나는 지나간 일에 대해 조금 쿨한 편이다.

어차피 지나간 일, 엎질러진 물에 대해서는 최대한 유연하게 대처하고 받아들이려고 하는 편이다.

그래서 남편이 실수해도 “잘했다”라고 쿨하게 이야기하고는 한다 (비꼬는 거 아닙니다, 정말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남편은 지나간 일에 대해 오래 담아두는 편이기에, 이렇게 말해주면 그나마 그 일에 대해서 잊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는 한다.


그리고 우리 남편은 굉장히 신중한 편이다.

굉장히 계획적이고, 모든 변수와 장단점을 생각한다.

그래서 때로는 결정을 내리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데, 그만큼 지혜로운 결정을 한다.

결정을 내리고 나서는, 그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계획함에 있어서 긍정적인 측면을 나보다 훨씬 더 잘 볼 줄 안다.

나는 좀 극단적이어서, 일을 계획할 때 모 아니면 도, 완전히 긍정적이거나 완전히 부정적이게 보고는 하는데, 나보다 남편의 냉철한 판단력을 믿어서 좋은 결과가 있던 적이 아주 많다.


나는 별생각 없이 1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결정을 내리는 데 비해, 남편은 물건 하나를 사도 한없이 고민을 하고는 한다.

그렇게 시간을 투자했기에, 우리 남편은 실수를 하면 괴로워하는데, 그에 반해 나는 실수한 것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그런데 이렇기 때문에 서로를 끌어줄 수 있음이 감사하다.


나는 어떠한 결정을 내릴 때 극단적인 부정적인 상태에 들어가면 어떤 것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빠르게 괴로운 상태에 빠지는데, 그럴 때마다 남편이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고 긍정적인 측면을 일깨워 주며 꼭 포기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어 좋다. 그리고 우리 남편이 실수해서 괴로워할 때, 내가 실수해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 부정적인 감정에 홀로 길게 갇혀있기보다는 서로를 끌어내 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이런 최악의 혈액형 궁합을 가지고도 결혼 3년 차에 행복한 신혼을 보내고 있는 부부가 있다는 희소식을 알리고 싶었다 (서론에 혈액형론을 그렇게 믿지 않는다고 적어놓은 것 같은데, 다 적고 보니 혈액형론을 맹신하는 사람의 글이 되어버렸다).


단순히 혈액형 궁합이나, 성격 차이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 주는 것에 관한 문제가 아닐까?


이 세상의 모든 B형 여자, A형 남자 커플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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