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진화과정과 웃음

빠르게 타올랐다, 빠르게 사그라든다

by 랑끗

앞서 말했듯이, 우리가 부부싸움을 하다 보면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가 숱하게 있다.

원래는 A라는 이유 때문에 시작했는데, 이게 B가 되고 C가 되고 결국에는 E가 되어서 끝에는 A라는 이유가 생각이 나지 않을 때도 많다.

마치 어느 만화를 보면, 포켓몬이 작고 귀여운 모습에서 시작해 진화의 과정을 거듭해 거대한 모습이 되어 가듯이 싸움도 그렇게 급진적으로 진화한다.

어느새 통제가 안 될 만큼 거대해진 싸움을 보며, 속으로는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다 보면 가장 먼저 내가 웃기게 느껴진다.


원래 싸우던 이유도 까먹었는데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상대방을 향해 내 정당함을 증명하기에 애쓰고 있으며, 그리고 왜 나는 이렇게 열 받아 있는가에서 오는 자괴감이 조금 섞인 자조적인 웃음.

그리고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져서 씩씩거리고 있는 상대방의 얼굴을 보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라고 생각하며 순간 멍해진다.

그러면서 싸움에서 이겨야겠다는, 이유 모를 승부욕이 먹구름이 걷히듯 내 마음속에서 싹 걷힌다.


우리는 왜 이렇게 멀리 오게 됐을까?라는 시적인 물음은 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웃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아니, 사실 이렇게 의미를 잃어버린 싸움이라면 져도 별 상관없다는 생각도 든다.


멀리서 보면 인생은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도 있는데, 굉장히 가까이서 다시 관찰하면 다시 희극이 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아직 감정이 가시지 않아서 남편의 일그러진 얼굴에 대고 푸하하 웃어버리는 건 매너가 아닌 것 같은데, 웃음 참기는 힘들다.

내 얼굴이 웃음을 참느라 이상한 모양으로 씰룩이다 보면, 남편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엄청난 감정의 변화에 남편은 완전히 따르지는 못하면서도 입꼬리가 삐죽거리며 올라간다.

아니, 사실 처음에는 헛웃음이다.

그다음에는 이 싸움에 최선을 다해 열을 올리는 자신의 모습을 민망해하며 짓는 웃음.

그리고 남편도 결국 함께 웃는다.



처음 이런 일이 있었을 때는 자신을 놀리는 것 같다며 더 분개하던 남편은, 이런 내 모습에 꽤 익숙해진 것 같다.

익숙하지 않으면 자기 속이 터질 것 같으니까, 그냥 억지로라도 익숙해지려 노력한 걸까?


“우리 왜 싸우기 시작했지?”

이럴 때쯤 나는 나보다 기억력이 좋은 남편에게 묻는다.

그럼 이성적이고 기억력도 좋은 남편은 내게 알려준다.

그때쯤 되면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는다.


각자 다시 한번 생각해 봐도, 싸우게 된 이유는 저 뒤편으로 사라지고 다른 이야기로 싸워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 언제 싸웠냐는 듯, 우리는 서로 깔끔하게 사과를 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돌아간다.

그렇게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내 기분을 나쁘게 만들었던 모든 게 상쇄된다.

남편도 마찬가지고.


상대방을 향한, 배려 없는 감정의 업 앤 다운은 자제해야겠지만, 때로는 이렇게 한번 웃고 넘어가는 게 꼭 나쁜 일은 아닌 것 같다 (웃음을 못 참는 사람이 대부분 나라서 그런가?).


자존심 때문에 싸움을 질질 끌어 몇 차전까지 이어지며 서로에게 상처 주는 언행을 하는 것보다는, 싸움의 본래 이유를 잃어버렸다면 한번 웃고 넘기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아, 하지만 상대방을 더 열 받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 상대를 봐가면서 이 방법을 사용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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