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불안함의 이유

by 동굴탐험

지난주, 회사에 반차를 쓰고 오후 시간을 회사 근처에서 보낸 적이 있었다. 내 볼일을 보고서는, 평소에 다니던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평소와는 너무 다른 기분이 들었다. 순간, 횡단보도를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나는 유일하게 갈 곳이 없는. 네거리의 횡단보도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가운데서 헤매는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나를 뺀 모두 사람들이 회사든 학원이든 집이든, 어딘가 정해진 곳을 향해 쉼 없이 걸어가고 있었지만, 나는 정해진 곳 없이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물병과 같이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순간 횡단보도 한가운데서 아뜩해지는 그 순간,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길을 건너긴 했지만, 그곳조차도 내가 가려던 곳은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곳. 우리가 이른 아침 시간에 일어나서 버스를 타고, '나'라는 사람이 속한 익숙한 '공간'으로 매일 출근한다. 그러고는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때로는 그 이상의 시간을 그 공간에서 벗어나지 않고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떨어지는 시간이 길수록 (누가 감시하지도 않지만) 감시하는 눈이 있는 마냥 불안해한다. 과연 우리가 불안한 이유는 속해있는 '공간'을 벗어나서 일까? 최근 재택근무가 늘어나는 것으로 보아, 불안함의 이유가 단순히 '공간'을 벗어 나서는 아닐 것이다. 우리가 불안한 이유는 내 자신의 갈 곳. '방향성'을 상실해서 아닐까? 내가 속해있는 회사. 또는 내 학교를 제외하고는 내 갈 곳이 어딘지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평일 낮 시간에 회사원들이 즐비한 을지로 한 가운데서 걷는 사람들 중 진정으로 본인이 갈 곳을 아는 사람은 아마도 1명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방향에 대해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못해도 '어디 가세요?' 란 질문에 약간의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저는 이 방향으로 갑니다. 왜냐하면 그 방향이 좋을 것 같아서요.' 란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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