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등행렬

by 끝의 시작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는 연등행렬을 보기 위해 종각에 들렀다.

종각역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감싸는 인파와

발 디딜 틈조차 찾기 어려운 거리

전국각지에서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또 적지않은 외국인들도

그 빛의 강물을 보기 위해 이곳으로 발걸음을 한다.


행렬도 큰 물결이지만, 그 인파 또한 하나의 물결이 되어

서로가 조화를 이룬다.

모두 같은 것을 기다리는 얼굴들
들뜬 속삭임과 조용한 기다림이 공기 속에 뒤섞여 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서부터 불빛이 일렁이고,
작은 점들이 모여 거대한 형상을 이루어 다가온다.


탐스런 연꽃등과 그 속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을 발한다.
장엄하면서도 소박하고, 화려하면서도 단정한 등불의 행렬.
수많은 사람들 손에 쥔 등불 하나하나에 담겼을 염원.


느린 듯 끊이지 않고

물밀듯 다가오는 그 흐름 앞에 서 있자니
경건한 마음이 절로 고개를 들고,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불빛들을 바라보며
나도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를 올린다.

그저 그 순간, 그래야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알아보는 이 없는 나는 그저 작은 점 하나이지만,

외롭거나 초라하지는 않다.
내 옆, 그리고 그 옆의 사람도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본다.


대열 속의 등불들과 구경 나온 사람들은

서로에게 손을 흔들며, 같은 미소를 짓는다.
따뜻하고도 묘한 위안을 주며 나를 두드린다.


두 시간 남짓.
시간은 빛처럼 물결처럼 흘러갔고,

언제 그랬냐는 듯, 발 디딜 틈 없던 거리에도 빈틈이 생겨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여전히 등불의 잔상이 어른거리고,
귀에는 고요한 여운이 남았다.
화려한 등불과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내면의 평화를 맛보았다.


지방에 오래 지내다 오랜만에 서울 땅을 밟고 사는 요즘이지만,

천만의 삶 속에서도 나는 늘 모니터 앞에 앉아 거리를 둔다.

아침 저녁으로 이동하는 전철 안에서도

그저 같은 장소에 있을 뿐, 그들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많은 등불과, 인파가 만들어낸 풍경
그 거대한 바다 한가운데 잠시 머물렀던 오늘은,

조각으로 살아가는 삶 속에서 온전한 원형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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