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맛을 나는 잘 모르는데,
정확히 말하면 그 차이들을 구별해내지 못한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목 넘김의 부드러움이라든지,
혀끝에 남는 여운이라든지,
어떤 과일 향이 난다거나 고소한 풍미가 느껴진다는 식의 표현들이
내게는 그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뿐이다.
소주는 다 같은 소주다.
쓰고 알싸하고, 목구멍을 탁 치며 넘어가는 그 느낌.
상표가 무엇이든, 도수가 조금 다르든,
내게는 그저 '소주'라는 이름의 술일 뿐이다.
맥주도 마찬가지다. 시원하고, 톡 쏘고, 약간의 쌉쌀하고.
누구는 에일의 깊은 맛을 논하고
라거의 청량감을 이야기하지만,
나에겐 그냥 금빛 액체이고 하나의 술일 뿐이다.
와인이나 위스키라고 또 뭐 논해서 무엇할까.
그 때문에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지점은
사람들이 어쩜 그리도 예민하게 맛과 향을 구별해내고,
자신만의 선호하는 브랜드와 종류를 찾아내는 것인지.
어떤 술이 더 낫다고 하는 구구절절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면
속으로는 조금 딴 생각을 한다.
'정말 그런 맛이 나나?' 하고.
뭐 그정도로 술에 무관심하지만은
참 이상하게도
문득 술 한 잔이 생각나는 날이 있다.
맛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것이 주는 감흥을 온전히 느끼는 것도 아니면서,
그냥 무언가의 이유로 술이 마시고 싶은 저녁.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일 수도 있고,
유난히 마음이 이러저러한 날일 수도 있고,
혹은 뭐 마냥 기분이 들뜨는 날일 수도 있다.
꼭 누군가와 함께여야 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은 왜 술을 찾을까.
나처럼 맛을 잘 모르는 사람조차
가끔씩 술을 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맛 그 자체보다는,
술이 만들어내는 어떤 순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잔이 부딪히는 맑은 소리나
함께하는 사람들의 나지막한 목소리라든지
은은한 조명 아래 취기가 살짝 올라올 때의 노곤한 기분이라든지...
어쩌면 술은,
여기저기 잘 맞는 그런 열쇠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평소에는 어려웠던 속마음이 조금 가벼워지거나,
그저 복잡한 생각들을 잠시 멈추게 하는 작은 쉼표 같은 역할이랄지?
꼭 알코올의 힘이어야만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이
술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슬픔을 달래왔던 데에는
분명 맛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술맛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다.
앞으로도 당연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또 문득
술 한 잔이 생각나는 밤이 찾아올테고
맛보다는 다른 무언가를 찾아
조용히 잔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맛보다 더 복잡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것에 끌리는지도 모르겠다.
취해서 하는 소린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