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의 저편

by Hache

그냥 반년쯤 삶을 연장하고 있는 거라 생각해. 구름이 많고 습기 찬 날인데 언뜻 옅은 쪽 보이는 붉은 태양빛이 자연의 비밀을 모두 품고 있는 듯, 바라보니 맘이 편해지네. 영원히 극복되지 않을 흐린 날 우울이 어김없이 방문한다. 인이어에서 흘러나오는 최낙타 ‘welcome’을 무한반복으로, 박자에 맞춰 스테퍼를 해봐도 기분은 그대로. 그래도 약간의 쌀쌀함에 잔뜩 찌푸린 하늘을 보며 스텝을 밟으니 제주에서 산책하는 느낌이 들어 그 점은 맘에 들어. 하늘만 보면 그 아래 더러운 인간, 인위적 군상들이 안 보이니 그래도 잠깐 수면에 나와 숨 쉬는 것 같다.


여전히 끝이 없네. 아등바등 인간의 삶은. 죽음 이후는 무엇일까? 그저 통로의 하나일 뿐이라면 창조자는 '문'을 지나기 전 인간들이 그 사실을 모르길 바라겠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애쓰지 않을 테니깐. 그럼 창조자 입장에선 재미없지. 모래알보다 작은 유기 복합체들이 손톱보다 작은 평면에서 왈가왈부하는 모습이라도 봐야 거대 우주의 공허함을 버틸 수 있을 거야. ‘죽음 이후를 경험했습니다’, ‘신을 만나고 왔습니다’와 같은 얘기들 종교계에 흔하지. 다 개소리. 그건 그냥 니 꿈이야. 주입해 놓은 비디오가 딱 그 구간에 뇌에서 플레이된 것일 뿐.


문의 진실이 밝혀지면 누가 걱정할까? 보험사들이 제일 먼저 떠오르네. 인간의 불안을 팔아먹는 사기꾼들. 주식이나 증권사들도 마찬가지. 뭐, 확장해 보면 국가라고 다를 건 없겠네. 각종 불안, 음모를 덧대 사회를 운영해 가는 것이니. 합격증이라는 종이 쪼가리 하나 얻는 게 중세 면죄부라도 되는 양 몰려드는 인간들도 허무하긴 마찬가지일 거야. ‘문의 비밀’까지 가지 않아도 사실 합격 다음날 죽을지 아무도 모르지. 무가치함에 영속성을 부여해 마음의 위안을 삼으려는 연약한 인간의 속성이야말로 ‘비밀’ 유지의 가장 중요한 엔진으로 창조주가 인간 속에 넣어둔 것일지도 모르겠다.


몸이 아픈 덕에 한 템포 쉬게 돼서 다행이다. 언제건 정리하고 또 새 길로 떠나야 하는데 아직 막연해 보이네. 그래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긴 여행 끝에 문의 저편에 다다를 때가 있지 않을까? 천국은 아니더라도 뭐, 새롭긴 할 테니 잠시 또 머물만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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