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

by Hache

이별과 죽음은 동일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더 이상 내 세계에 상대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점이 가장 닮았는데 이는 당사자에게 깊은 상실의 감정을 안겨준다라는 부분에 이르러 완벽히 동일한 사건이 된다. 물질의 유무는 사실 무의미하다. 인지의 범주에 머물지 않는다라는 사실만으로 이미 본질적으로 두 사건을 구분하긴 어렵다.


올해 들어 부쩍 상실의 감정을 자주, 그리고 깊게 바라보게 된다. 없는 사건인 양 넘어가던 어린 시절과 다르다. 어쩐지 그 상실들로 인해 내 시간은 연속적이지 않고 뚝뚝 잘라진 구간들이 생겨났다고 느껴진다. 분명 나로 존재한 세월인데 그 안에 내가 없다. 조금 분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과거가 없는 사람이 된다는 건 어딘가 기반이 없는 집이 된 것처럼 불안한 느낌이다.


인생의 중반부쯤 오게 되니 많은 것들이 달리 해석된다. 극적인 사건과 뚜렷한 존재감으로 가득 차야지만 의미 있는 내가 된다고 확신으로 가득 찼던 나를 지나 이제는, 나의 하루가 아주 조그마한 지적 유희와 대다수가 될 감당할만한 지루함이 공존하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 생각한다. 난 특별한 사람이 아니니깐 말이다. 안분지족이라는 사자성어가 이런 생각에 어울리는 사자성어인 듯하다. 옛 성현들도 대부분 지루하고, 가끔 반짝이는 시간들을 보냈겠지, 누구나의 인생이 그러하듯.


늦은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아직은 두려움에 종종 사로잡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언젠가 내리는 비를 그저 자연스럽게 맞을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가짐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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