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기숙사 생활을 2년간 했다. 6인 1실, 2층 침대 3개와 여섯 개의 얇은 사물함을 제외하곤 공간이 없는 작은 방이었다. 학교 등수로 방 번호를 정하고 거기에 맞춰 여섯 명씩을 룸메이트로 만들었다. 전교 순위가 올라가면, 혹은 앞에 빈자리가 생기면 높은 등수가 우선 그 자리를 차지하여 방을 옮기기게 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3번 방이었고 한 번도 옮기진 않았다.
당시 일과는 6시 영어회화 라디오로 기상, 기숙사 앞에 30분까지 모여 충훈탑 앞까지 조깅, 7시 30분까지 식사, 50분까지 등교, 밤 10시까지 수업 및 강제 자율학습, 11시까지 기숙사 야식, 다시 새벽 2시까지 선택적 야자. 2년간 하루에 잘 시간으로 네 시간이 주어졌었다. 매일 피곤했고 아침 세수할 때마다 비누 대신 코피 세수를 했지만 중간 퇴사하지 않고 졸업 때까지 버텼다.
이런 와중에도 10대의 체력은 참 대단했었다. 잠시간이 부족한데도 싱숭생숭하고 나의 인생이 어찌 될까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하고, 또 철창에 갇힌(실제로 기숙사에 들어오면 1층으로 가는 유일한 계단을 철창으로 막고 자물쇠를 채워나 그곳은 마치 교도소와 같았다) 나의 인생이 답답하고 부조리하고 또 묵직한 무언가가 가슴속에 있는데 뱉어내지 못해 답답해 늘 새벽 4시가 넘어 잠이 들었다. 다행히 새벽 두 시간 여는 늘 신해철 씨가 고스트 스테이션이란 라디오 프로를 진행하며 함께해주었고 덕분에 서울 홍대에서 활동하는 인디씬들의 비주류, 새로운 음악들을 접하며 나 대신 세상을 향해 외쳐준 싱어송라이터들 덕분에 조금은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잠은 두 시간밖에 못 자지만 유일하게 오롯이 주어지는 자유시간인 새벽 2시부터 4시를 갖지 못하면 난 마음이 터져 죽을 것만 같았기에 매일 새벽 마약처럼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새삼 신해철 씨를 죽게 한 의사 놈의 새끼를 처단하지 못하는 개한민국의 부조리한 의료 시스템과 권위주의와 부도덕함이 끔찍해진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대학 때도 잠 못 이루는 밤은 많았다. 비교도 안될 만큼 거대한 자유를 누리게 되자 또 그것이 고민이 되었던지 눈을 뜨고 CD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새벽 다섯 시까지 들어야 간신히 잠들 수 있었다. 갑갑함이 커지면 종종 새벽 기타를 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니 완벽한 민폐캐였군.
그리고 한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의도적으로 잠 시간을 확보하려 노력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어떤 강박이 생겨 늦어도 두시에는 잠자리에 들고 다음날의 출근에 대비했다. 난 자랐고, 성숙한 성인이 됐고, 멀쩡한 직장을 가졌고, 이제 기숙사 철창도 없지만, 스스로 철창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발견했다. 사회화, 다른 말로 학습된 복종. 드디어 자아를 잃고 망해버린 인간이 된 것이다.
다행히 완전히 망하진 않았는지 오늘 또 잠 못 이루게 됐다. 최근에 배포해 놓고 추가 작업을 안 하고 있는 npm 라이브러리의 여섯 이슈가 머릿속을 맴돈다. 읽다 만 두 권의 책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과 장강명 작가의 ‘책 한번 써봅시다’가 보인다. 속이 허전하다. 창 밖 도로의 가로등이 길게 언덕 위 터널 입구까지 이어져 있고 몇몇 상점의 간판 네온사인이 번쩍인다. 고요하고 냉장고 전기 소리가 들린다. 잠을 이루지 못하겠다. 고스트 스테이션이 있었으면 난 또 네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겠지. 그래도 완전히 망하진 않았구나 싶어 기분이 좋다. 여전히 자고 싶지 않을 때 안 잘 수 있는 사람이 남아있구나 싶어 다행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