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야옹씨 May 14. 2023

이젠 슬프지 않다

여름의 빌라. 백수린.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멈췄다. 거의 대부분의 것이.


씻고 잠자리에 든다. 일곱 시 반에 알람을 맞춰둔다.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난다. 준비를 하고 출근길에 몸을 싣는다. 365일 막혀있는 서해안고속도로 끝자락을 간신히 지나 강남고속도로로 들어선다. 서울대 근방으로 빠져나와 2호선을 향해 역시 365일 막혀있는 깔딱 고개를 지난다. 15분 걸리는 거리를 40분이 좀 지나 환승역에 도착한다. 지하를 내려가 다시 빼곡한 인파 속으로 몸을 구겨 넣는다. 이번주도 어김없이 반복된다. 어항 속 유리벽에 붙어 동그란 궤적을 쫓아 헤엄치던 금붕어가 떠오른다. 힘써 헤엄쳐 봐야 금세 제자리로 돌아오던 작고 조금은 투명하게 빨갛던 금붕어. 어항 밖에 꺼내놓으면 작은 몸을 파닥이며 죽어갈 거란 사실을 알기에 기껏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래된 물을 갈아주는 것뿐이었다. 그래봐야 어항의 굴레는 변함없었지만.


출근길엔 대체로 눈을 감아버린다. 잠이 오는 것 같지도, 오지 않는 것 같지도 않다. 전염병이 다 지나갔다지만 아직 마스크는 쓰고 다닌다. 어차피 동물군집의 바이러스 전파는 일상이다. 언젠가는 달리는 차 안에서도 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아직 무언가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환상이 남아있던 시절일 것이다. 아침 햇살 한 줌도 나의 유의미를 위해 쓰인다는 지극히 우주인간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이었으리라. 그저 우주 표면에 깔려있는 시간축 좌표의 한 점을 지나는 중일뿐, 자연의 원리에 의미란 그 어느 곳에도 없다는 진실은 이미 물리학에 심취했던 15여 년 전 알았던 사실일터,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또 다른 15년이 필요했을 뿐이다. 자연의 흐름은 선악도 뜻도 없는 법, 그 무심함이 잔혹하게 느껴진다면 15년을 더 흘려보내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알았지만 받아들이지 못하던 시간들은 이제 지났다. 무의미, 무가치, 유기체가 가진 숨의 다른 말.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중학생인가 어느 어린 시절 판타지 소설을 읽으며 다음 생에는 바람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무엇과도 부딪히지 않고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그저 스스로만 존재하며 자유로이, 어디든 갈 수 있는 그런 바람. 다행히 다음 생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이미 우주 속 유기체라는, 바람과 같이 의미less 자연이 되었으니 그저 다행일지도.


멈췄지만 이젠 슬프지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벚꽃일요일새벽하루치분노또는우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