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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씨 Jun 02. 2023

여름밤에 어울리는 노래 목록을 틀어본다

꿈을 꿨어요. 카더가든

해가 하루를 넘기기 직전, 어슴푸레한 빛이 한여름 절정에 다다른 초록 나뭇잎의 색조차 아스팔트 회색빛처럼 바래 보이게 하는 낮은 조도의 시간, 너른 공간이지만 주위엔 아무도 없다, 허전한 마음이 들어 누구든 곁에 두고 싶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차분히 저물어가는 하루를 멍하니 바라보는 것, 그것 말곤 아무것도 허락되지 않는 시간.


여름은 대조적이다. 이른 여름은 각각의 생명체가 자신이 살아있음을 어떻게든 뽐내지 못해 안달 나고 달아오르는 시간이다. 반대로 여름의 끝은 짧게 불타고 사그라져가는 성냥불 같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길지 않은 시간은 공평하다. 짧건 길건 그저 저물어가는 해를, 여름을, 생명을 속절없이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슬픈 것일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일까? 후회일지도.


그림자가 길어진다. 점점 더 길어지고, 발 끝은 여전히 나와 함께 하지만 얼굴은 멀어져 간다. 목소리가 닿지 않는 곳까지 멀어져 간다. 어릴 때는 내가 큰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흥미롭게 바라봤다. 이제는 안다. 발은 붙어있을지언정 멀어져 간다. 점점 더 멀어지다가 목청껏 소리쳐도 이젠 듣지 못할 곳까지 멀어져 간다. 희미해져 간다. 성장은 더 또렷해져 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성장은 실은 희미해져 가는 것.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는 것. 원래의 나를 여름의 끝자락 어느 저녁 무렵 강가에 홀로 남겨두고 안녕을 고하는 것. 안녕. 텅 비고 외롭겠지만, 잡아보려 소리쳐 봐도 돌아오는 건 내 소리뿐. 그림자는 대답이 없고 가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자연의 원리는 냉혹하다. 나의 마음이 담길 곳은 물리학 공식에 변수 하나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 사실은 별것 아닌 것. 혼자라 생각했지만 실은 함께였다. 모두가 너무 작고 세상은 너무 넓어 바로 옆, 시선이 닿는 곳에서 함께 길어져가는 그림자를, 주홍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모두 함께 바라보고 있다는 걸 종종 잊어버렸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이별. 흐릿해지는 나. 아직 담담히 안녕을 고할 수 없겠지만, 여전히 눈물이 흐르지만 인정하기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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