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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씨 Dec 17. 2023

습작2

지난 밤 이곳에(안녕, 그림자)

https://brunch.co.kr/@endurance/261

    반


이른 햇살. 문득 잠이 깬다. 베개 옆이 촉촉한걸 보니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마음은 아직 꿈 속 그곳, 흐릿하지만 늦은 오후 한강 어느 둔치에 있는 것 같아. 뇌는 뚜렷히 여긴 니가 사는 집이야 현실로 이끈다. 연남동 4층 연립주택의 옥탑방. 노을을 좋아하고 경의선 철길이 좋아 계약한 집이다. 서울로 직장을 잡아 올라온지는 사년이 되어간다. 서울에선 노을을 볼 수 있는 '정상'적인 집을 구하려면 식, 주를 포기하고 최소 20년을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았다. 그래도 노을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집 앞 공원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조금 무섭지만 주택가 깊은 곳에 위치한 이 옥탑방을 구했다. 난 벌레가, 어두운 골목길이, 무엇보다 사람이 무섭다. 나만 무섭진 않겠지. 골목을 들어오며, 옥탑을 오르며 매일 달랜다.


출근해야지


아직 정신이 머무는 그곳, 꿈 속 그 장소로 가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어차피 아침이니 지금가는 것보단 퇴근길이 나을거라 생각한다. 출근 준비는 대충, 지난 밤 미뤄뒀던 머리를 감는다, 가장 뜨겁고 센 바람에 대충 말린다, 어제 들어오며 거실에 소파 팔걸이에 걸쳐둔 옷을 그대로 집어들고 곧장 집을 나선다. 그제도 같은 옷이었던 것 같다. 중요하지 않다.


쾅!


화가난 듯 크고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는 문을 뒤로한 채 내려온다. 오늘 종일 또 누군가의 화를 받아내야 할 텐데 너만은 내 무심함음 안아주렴.안개가 짙어 어슴푸레한 공원길. 잠이 덜 깬걸까? 눈은 비벼보지만 여전히 시거리가 짧다. 다행히 흰색 안개이다.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던 때가 있었다. 아마 세 달 쯤. 옅은 보라색 안개가 짙게 깔린 진주였던지, 지방의 어느 터미널에서 끝도 없이 이별을 반복했다. 지난밤 꿈처럼 이별이 주제였지만 그땐 대상이 타인이었다는 점, 공허한 마음은 비슷했는데, 아파서 어쩔줄 몰랐는데 지난 밤엔... 아팠던가? 그 때 같이 가슴 중앙에 물리적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건 다행이다. 그만! 오늘은 평일이고 난 출근중이야! 찰싹!찰싹!찰싹!찰싹!찰싹! 찰싹! 비슷한 속도로 앞을 걸어가던 여자가 흠칫 어깨를 움추리다 다리를 삐끗하고 뒤를 돌아본다. 더 다칠까 미안 별일 아니야, 제스쳐를 과장되이 보여준다. 답지않은 친절이 맘에들다 맘에 들지 않는다.


공원길은 홍대입구역을 향해 곧장 이어져 있다. 적막 속 멀리서 분주함이 저 멀리로부터 서서히 다가온다. 지난 밤 수많은 '연트럴파크'를 사랑하는 이들의 열기는 사라졌다. 밤새 차가워진 바닥의 기운만이 아직 동네를 감싸고 있다. 열정 가득한 연남동을 좋아하지만 출근길 적막과 차가움의 이곳을 좀 더 좋아한다. 2호선 입구까지는 약 20분 정도, 서두르고 싶진 않아. 늘 그렇듯 일부러 걸음을 늦춘다. 마음의 템포를 낮춘다. 좀 더 공원의 한기를, 정면에서 조금씩 비춰오는 태양빛을 받는 시간을 누린다. 어딘가로 향해가는 고양이, 이르게 모이를 찾느라 바쁜 비둘기, 반려인과 함께인 아침을 맞아 행복한듯 꼬리를 흔들기 바쁜 강아지를 천천히 관찰한다. 무서워. 숨어있고 싶어. 세상따위 안나가면 안될까? 사람 같은거 만나고 싶지 않아. 매일 아침 내 옷자락을 끈질기게 잡고 놓아주지 않는 아이. 이 공원, 출근길 20분의 공원길이 없었다면 아마 매일 이렇게 철문을 나서지는 못했겠지. '옥탑방 자취청년 숨진지 한달만에 발견되, 이웃 주민 누구도 몰랐던 MZ세대1인가구의 안타까운 현실' 따위 싸구려 기사로 네이버 뉴스 상단 하루정도를 장식했겠지.


평소보다 5분정도 늦었다. 곧장 어두운 지하철 정거장을 향해 내려간다. 공원과는 무척 대조적인 공간, 지하철은 늘 고통스럽다. 주어진 공간은 두 발을 둘 면적 정도, 어깨에 둘러맨 에코백을 앞으로 안고 다시 두 팔로 몸을 감싼다. 이어폰을 미리 준비해두고 지하철에 오르기 전 좋아하는 노래를 반복듣기로 바꿔둔다. 출근길에 늘 듣던 노래가 슬몃 지겨워지면 누군가 만들어 놓은 플레이리스트를 뒤져본다. 취향이 제법 맞는 리스트를 찾으면 듣지 않았던 곡을 선택해서 틀어둔다. 다행히 취향에 잘 맞으면 노래가 만들어낸 공간에 푹 빠져 눈을 감는다. 운 좋게 마음마져 온전히 빼앗아가는 곡일때는 하염없이 넘실대는 감정을 담아두지 못하고 나만의 비밀 일기장앱에 흐르는 그대로 얘기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곡이다니! 내 맘을 이토록 빼앗기다니! 한참 정신을 잃고 있다가 강남역에 다다를쯤 되면 동물적 생존본능이 눈을 뜨고 삼성역을 지나쳐버린것 아닐까 걱정되어 슬몃 현실로 돌아온다. 마음은 아직 음악 속 그곳에 둔채 열차 창밖의 어둠을 응시한다. 아무래도 출근을 하려면 지하철을 내릴 쯤엔 마음을 잔잔하게 해둘 필요가 있어 싫지만 억지로 눈을 뜨려 노력한다. 고통스럽지만 그렇기에 몰두하게되는 시간, 매일 2호선으로 테헤란로를 출퇴근하는 이들은 순교자의 그것과 유사한 감정을 가질 수 있기에 어쩌면 행복하다고 해야할까? 역시 억지스럽다.


문이 열린다. 삼성역 세글자가 늘 그렇듯 눈 앞에 보인다. 원래는 3번 출구로 나가야 하지만 오늘도 1번 출구를 택한다. 시계를 보니 출근 시간까지 25분 여 남았다. 여름의 초입. 길가의 가로수가 뿜어내는 아침의 초록을 조금 더 느끼고 싶어 너무 급하지 않으면 늘 대로 맞은편으로 나오는 출구를 선택한다. 땅속 깊은 곳에 있다가 나오면 어쩐지 태양빛도 그리워져 다소 더워졌지만 나무 그늘이 없는 곳을 택해 발걸음을 옮긴다. 보통 걸을땐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오늘은 예외, 여직 넘실대는 마음이 흐르도록 두고 싶어 조금 위험하지만 일기장앱을 다시 연다. 쓰고 또 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사무실에 도착해서도 현실의 나로 돌아오기가 좀처럼 힘들다. 어떨땐 그냥 흔히 만나게 되는 사람들처럼 축구나 드라마, sns를 보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꼭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도, 진심이 아니어도 다들 잘 살고 있으니깐.


커피?


세 걸음쯤 고민하지만 이내 건너뛰기로 한다. 출근길 종종 들르는 카페는 오전 시간이 항상 혼잡해 커피를 받은 후 다급해진 종종 걸음으로 출근해야 한다. 커피는 너무 소중하지만 오늘은 그보다 더 소중한 감정이 있기때문에 맛없지만 카페인은 충전시켜주는 사무실 셀프메이드 커피도 만족할 것 같다. 봄이 만연해지고 초록이 또렷해지던 5월 부터 언덕 아래로 펼쳐진 길을 차도 한가운데서 찍고 싶다 생각했던 건널목도 오늘은 그냥 건넌다. 저무는 해를 함께 바라보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곁엔 누가 있었을까. 왜 눈물이 났을까. 그곳이 한강이긴 한걸까. 감정과 이미지가 이토록 선명해서 재주는 없지만 글만으로 부족한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다. 그래. 그림도 마음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구나, 당연한 깨달음.


출근이 확인됐습니다!


보안장치의 경쾌한 음성이 날 깨운다. 이곳은 현실. 출렁이는 감정이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척, 도구적 나로써 온전히 살아내야 하는 여덟시간, 아무렇지 않음을 연기할 수 있다. 잘 해내고 있지만 아무렇지 않은것이 아님을 또 잘 숨기지도 못한다.


에이 ㅆ...


참았던 마음이 물리적 실체를 뚫고 나오자 마직막 이성의 끝이 이내 막아선다.


타락 탁탁 촤르르륵 탁! 타락 타라라 타타타 탁!


평소보다 차갑고 둔탁한 소리. 아침의 감정이 컸던 만큼 현실과의 이질감은 더더욱 크다. 평온할 수 있을거란 환상이 깨어지는데 단 1분이면 충분한 이곳.


쏴아아아아


달궈진 머리, 몸. 손을 씻다 팔을 높이 걷고 전체에 찬물을 얹어본다. 거울을 본다. 열기는 가시지 않고 빛이 없어진 흐릿한 눈빛을 가진 이를 마주한다.


솜! 지난 겨울까진 눈동자에 빛이 보였는데 사라졌어요. 어떻게 된거에요?

지운님도 만만치 않거든요?!


반짝이던 눈동자를 가졌던 시절이 있었다. 스스로를 믿던 아이. 아니. 나 외엔 아무것도 믿지 않았다란 표현이 더 적절하다. 언제일까, 빛이 날 떠나간 건. 요즘 비슷한 생각을 자주하게 되네. 지난 꿈도 그렇고. 나이가 들어간다는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잔인한 과업. 멀어진 꿈, 돌아갈 순 없겠지만.


55, 56, ... 59, 0. 탁!

수고하셨습니다!


아직 한낮의 열기가 남아있는 거리로 나온다. 같은 시간의 퇴근이지만 여름이 더 나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퇴근길에 잠시나마 노을을 볼 수 있다는 것. 마음이 온통 헝클어져 정리가 되지 않고 머릿속은 그보다 더 복잡해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지만 계속해서 생각하게되는 길 너머로 푸른빛이 붉은 계통으로 슬몃 변해가는 것이 보인다.


한강!


요즘 해가 길어서 서두르면 가볼 수 있을 것 같다. 현실의 무게에 꿈같은건 아무렴 어떤가 싶다가도 오늘만큼은 내일의 현실을 준비하기보다 오늘의 나에게, 감정에 치우쳐진 나에게 충실하고 싶어. 한참 타고가던 퇴근길 열차에서 먼저 내려선다. 둔치까지는 좀 걸어야 한다. 해가 지기 전에 가고 싶어. 조급해진 발걸음은 출근길의 그것보다 크다.


휘유우우우


늘 기분 좋은 바람. 지쳐 가만 있어도 어딘가로 데려가주는 고마운이. 조그만 언덕길을 오르자 이내 너른 한강을 마주한다. 다행히 아직 저 멀리 수평선 위로 저물어가는 해가 보인다. 좀 더. 좀 더 빨리. 언덕을 다시 내려가 강변 둔치로 급한 걸음을 옮긴다. 경사가 제법 있어 이내 달리는 꼴이 된다. 잠깐 꼴사납다 생각됐지만 에코백을 어깨에서 내려 손에 아무렇게나 움켜쥔채 힘껏 달려본다.


쌔앵 쌔애엥


맞바람이 거새 달리기 어렵지만 기분은 더 좋아진다. 앞머리가 이마에 갈라지며 뒤로 펄럭인다. 도착! 수평선에 더 가까워져있는 8월의 태양, 붉게 물들어 있는 강물은 수평선으로부터 눈 앞 바로 이곳까지 크리스탈 물감이 풀어진듯 반짝이며 내 안으로 들어온다. 지난밤 함께 있었던 이들일까? 먼저 온 몇몇의 그림자가 각자의 발치에서 벌써 저만치 멀어져 있다. 흐릿한 그것이지만 소중한 그들인 것 같아 밟고 싶지 않아. 모두를 피해 걸음을 멈춘다. 해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눈 앞은 온통 주홍빛. 여전한 바람. 평행선을 그리는 그림자들. 점점 커져가는 우리. 점점 흐릿해져가는 우리.


멀어지진 않는다, 평행선은 아무리 멀리가도,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도, 옆을 바라보면 아직도 거기 있었나며, 너도 흐릿해져 가고 있구나, 손 인사를 건넬 수 있는곳에 여전히 존재할 수 있게 해준다. 우주가 건네는, 물리학 법칙이 허락한 유일한 배려. 마음 써봐야 변할 것 없는 차가운 이곳이지만, 손 뻗어도 어쩌면 닿을 수 없는 거리이겠지만, 서로 사라져감을 시선만 돌리면 언제나 눈 앞에 둘 수 있으니, 내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고 소리치면 손 흔들어줄 이가 영원히 없어지진 않을테니, 평행선의 작은 배려가, 태양이 우리를 평행선으로 만들어줄 만큼 멀리 있다는 마음씀이 어쩐지 고맙다. 지난밤엔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알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어쩐지 입가에 미소가 담긴다. 여전히 눈물이 눈가에 고이지만 바람이 이내 닦아준다.


너희도 눈물이 나니?


어쩐지 물어보고 싶다. 고개를 돌려보진 않는다. 그저 이 시간, 우리가 만들어낸 이 곳, 이 우주 속 법칙을 깨뜨리지 않는다. 쉽게 발걸음을 옮길 수 없어 마지막 해의 머리 끝을 바라본다.


안녕. 안녕. 정말 안녕.

웃을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눈물 닦아줘서 고마워.

나는 멀어져가겠지만,

흐릿해져 가겠지만,

그래도 함께 사라져가는 누군가를

눈길 닿는 곳에 있게 해줘서 고마워.





.

.

.

.

멀어진 꿈, 되돌아갈 순 없겠지만

나는 볼 수 있어요


어느 시절 내 눈 속에도 빛이 담겨있었다는

추억하고 싶은 나를

흐릿해지기 전의 나를

기억해줘요






    .

    .

    .

    반


블라인드를 뚫고 엷게 들어온 한줄기 빛에 눈이 부시다. 잿빛 천정이 눈에 들어온다. 눈가에 괴인 눈물. 왠일인지 입가엔 희미하게 미소지었던 흔적이 느껴진다. 슬픔인지 기쁨인지 모를 감정이 어리둥절하다 주중일까? 주말일까? 슬몃 느껴지는 불안. 침대에서 서둘러 내려와 거실로 나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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