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
- 없는 그대에게 -
서른이 된 지 1년, 2년이 되고 나니 온통 주변에서 결혼한다는 소식뿐이다. 평소 연락이 없던, 심지어는 일면식도 없던 같은 직장에 있던 사람들조차도 청첩장을 가져온다.
'니 얼굴 태어나서 처음 보는데요?'
그래 뭐, 관습적으로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식을 알리는 것이 관습적인 결혼의 무언가 이기에 처음 보는 이의 이 잘못된 주소로 전달된 편지 같은 청첩장을 꺼내보긴 한다. 다만 안의 내용은 보지 않는다.
'디자인 참 후지네.'
구깆구깆, 슛! 곧바로 자리 옆의 검은 휴지통으로 날아간다. 입구 면적이 넓어 시원하게 잘도 들어간다. 저 청첩장 하나 만드는데 500원쯤 할까? 아니, 뭔가 반짝반짝 펄이 들어가 있고 올록볼록 앰보싱이 있는 것 같으니깐 1000원쯤?! 아깝다. 'Save the Earth!'를 외치며 쉬운 미닫이 문을 마다하고 인력으로 빙빙 돌려야 하는 마찰력이 매우 큰(오래된 쇼핑몰이어서) 원형문으로 굳이 들어가고 나왔던 나인데, 이 젊은이들 당최 나무 한그루의 숭고한 가치를 모르고 나에게 청첩장을 주다니, 그저 나무와 지구에게 미안할 뿐이다.
결혼식? 당연히 몇일인지, 어디인지, 심지어는 이름도 얼굴도 모른다. 미안하다. 청첩장 받을 때 너네 얼굴 안 본다. 이름은? 당연히 안궁 금하지. 오늘 보고 안 볼 거잖아. 이전에도 안 봤고 이후에도 안 볼 테니 나의 양자역학적 뇌에 인식되지 못한 당신은 확률로만 존재할 뿐, 진짜 이 직장 어딘가에, 지구 어딘가의 한 구석에 존재하는지 확인할 수 없다. 즉, 그냥 너는 나한테 없는 사람인 것이.. 니깐 좀 청첩장 좀 나한테 주지 말라고!
재밌는 것은 사실 난 이들을 한 번 더 마주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알고 있다. 네가 한번 더 떡 주러 올 거란 것을. 요즘은 쿠키나 호두과자 주더라고.
'난 호두과자로 주세요'
라고 미리 얘기해 뒀어야 할까? 떡은 사실 별로야. 간편하지 못해. 뭔가 부스러기가 질질 흘러. 더럽게. 기름도 치덕치덕 묻어있어. 약밥은 그래도 괜찮아. 나 그거 좋아하거든, 맛있으니깐. 여하튼 네가 호두과자를 가져오든 뭘 가져오든 받긴 받는데 난 또 니 얼굴 안 봐. 미안. 맛있게 먹긴 먹는데 이번에도 안 봤으니 여전히 넌 내 양자역학적 인식 세계에 확률로서만 존재하는 사람인 거야. 청첩장 내용도 안 봤으니 니 결혼도 내 세계엔 없는 일인 거지.
너무 나갔나? 하여튼 미안. 없는 사람이 없는 결혼 했다고 갑자기 먹을 거 주니 누가 주는 건 줄 모르게 맛있게 먹었긴 했는데 사람들이 '답례떡'이라는 명칭 붙이는 이거, 왜 나한테 돌리는지 모르겠다. 이건 그래도 버리지 않았으니 지구한텐 안 미안하네. 다행이다.
제발 주소 좀 잘 찾아서 보내. 물론 먹을 건 맛있었지만, 정 주고 싶다면, 그럼 청첩장은 주지 말고, 지구한테 미안하니깐, 먹을 거만 가져다주라. 이왕이면 쿠키나 호두과자로. 안되면 약밥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