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나는 대로
허망함이 밀려온다. 정확히 어떤 느낌이라 형용할 수 없다. 속이 텅 빈 느낌, 배가 고픈 것이 아니다. 누군가 애타게 그리운 것도 아니다. 무엇을 해도 별로 달라질 게 없을 것이라는, 그래. 아무래도 이건 체념의 느낌이다. 힘을 내지 않는 사람들을 게으르다 비판한 적이 있다. 그러니깐 딱 그 정도라고 깎아내리며 난 다른 삶을 살아갈 것이라 다짐도 했다. 내 신념이 다 틀렸다는 걸 알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략 중학생 때부터 비슷한 생각을 했으니 이십 년 정도 걸렸구나. 돌이키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이곳. 나의 노력, 나의 시간, 열정이 모두 그저 이 허무를 향해 달려왔다는 사실이 너무도, 너무나도 안타깝고 허무하다. 별것도 아니었던 인생, 빚내서 평생 콘크리트 상자 하나 장만하다 죽을 생, 파리만도 못한 삶이다. 요즘은 그저 졸린다. 책 따위는 전혀 손에 잡히지 않는다. 허무맹랑한 문장뿐인 곳에 눈이 향하지 않는다. 지친 걸까. 쉬면 나아질까. 세상의 본질이 변하지 않는데 쉰들 뭐가 변하겠어. 그저 잠이 올뿐이다. 자자. 시간 나는 대로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