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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냥냥 Oct 01. 2024

채움

2024년 9월 시작쯤 평일 아침에

아침 7시부터 두, 세 시간에 걸친 산책길을 나선다. 작은 천 길을 지난다. 대부분 출근 준비의 시간이라 길엔 이른 잠을 깬 노인들이 대부분. 간간히 자전거 등을 이용해 동네 출근을 하는 이들이 섞인다. 20분쯤 걷다 보면 중앙 공원으로 이어지는 미루나무 길을 마주친다. 늘 같은 방향으로 바람이 불어서일까? 미루나무의 몸은 중력방향으로부터 극 각 15도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것들을 볼 때마다 자연스레 하늘을 보게 된다. 잘은 모르겠으나 미루나무가 말하는 듯하다. 어서 위를 봐. 우리와 하늘이 얼마나 멋지게 어우러져있는지 확인해 봐. 이 풍경은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아 늘 그냥 지나쳐지지 않는다. 가만히 서서 하늘을 보고 바람을 느끼고 미루나무 잎들이 만드는 파찰음의 콘서트를 듣는다. 조금 더 공원을 향해 걷는다. 공원은 너르게 펼쳐진 저수지이다. 시청의 배려인지 초입에 나무데크와 햇볕 가리개를 포함한 나무 의자 세 세트가 저수지를 향해 마련되어 있다. 해가 뜨는 방향은 동쪽, 저수지를 포함해 해를 바라보기 위해 의자를 돌린다. 가을이지만 아직 초입인지라 해의 고도가 여름에 준한다. 강렬한 햇빛이 호수 표면에 반사된다. 바다도, 큰 강도 아닌 것이 윤슬을 기다랗게 만들어 반짝반짝 일렁인다. 빛이 너무 세 눈이 아프지만 자꾸 보게 된다. 오늘도 늘 만나는 황새가 황새 형태의 구조물 위에 앉아있다. 인구수가 제법인 도시이지만 평일 아침은 온전히 고요하다. 어른들은 어린이들, 청소년들과 일과를 함께한다. 자유로운 건 나, 그리고 노인들 뿐인 것 같다. 도시가 만들어내는 거센 물살에 미끄러졌거나, 그만 미끄러질 이들만이 고요를 마주할 수 있다. 이 도시에 아침 윤슬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게 될 이는 아마 5년이 지나도록 열 명이 안될 것이다.


넋을 잃고 있다 보면 조금 목이 마르기 시작한다. 부지런한 이들은 텀블러에 물을 챙겨 오겠지만 대충 몸만 빠져나온 이들은 이젠 도시의 오아시스 ‘메가커피’ 앞으로 하나 둘 모여든다. 커피점이 이곳 하나뿐은 아닌데도 모두들 한 곳으로 모인다는 것은 재밌는 일이다. 각성할 필요가 없는 시기이지만 여전히 열 시 즈음 카페인을 몸이 부르는 것은 노예의 흔적과 같다. 한 땐 커피 향, 맛, 장소, 카페의 철학, 문화를 함께 즐겼으나 이젠 그저 오전 시간을 버티게 해 줄 약물에 불과해진 것 같아 내내 씁쓸하다. 스타벅스에 비해 덜 태운 커피를 쓰지만 여전히 프랜차이즈 커피는 쓴 맛이 주를 이룬다. 쓴 맛은 자유를 잃은 고통에서 주의를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병원에서 혈관 주사를 맞을 때면 으레 바늘을 찌르기 전 허벅지를 있는 힘껏 꼬집는다. 비슷한 맥락으로 2024년 한국을 살아가는 평일의 대다수가 카페를 들르게 되는 것일지도. 메가오더 182번 손님.


아홉 시 즈음 이르러 도시의 공기는 거칠고 무규칙 한 파동으로 가득 찬다. 귀는 피로해지고 평온한 마음이 어느새 흔들린다. 침착해지려면 도시에서도 조금이나마 몸을 숨길 곳으로 들어간다. 커피를 들고 공원의 동쪽으로 난 천변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직장에 속해 있을 때는 내 한 몸조차 돌볼 여유가 없다. 마음을 돌볼 여유 역시 허락되지 않는다. 자고 일어나서 출근길, 사무실로 들어가 해가 질 때 나온다. 돌아오면 저녁 식사 시간은 진즉 지나 잘 준비를 해여하는 아홉 시가 되어있다. 밥은 죽지 않기 위해 먹는다. 제대로 챙겨 먹을 리 만무하다. 대충 배민 배달을 시키거나 인스턴트 음식으로 때운다. 기대했던 삶으로부터 멀어진 모습. 타인의 기대에서 멀어지고 사회의 기대에서 멀어진 온전한 공백의 나를 맞이하는 지금에서야 채워짐을 느낀다. 아침 햇살을 온연히 느낀다. 한 시간 넘게 걷는 다리의 피로와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땀방울을 느낀다. 오솔길 수북한 풀내음을 맡는다. 머리가, 마음이 비워질 때까지. 모두 다시 채워질 때까지 걸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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