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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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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냥냥 Oct 27. 2024

&

아침 햇살이 창 넘어 발 끝으로 드리운다. 렌트비가 저렴한 집이라 창은 북동향으로 나있다. 그래도 동쪽을 끼고 있어서 아침잠을 깨워주는 잠깐의 해를 맞이할 수 있어 다행이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킨다. 아늑한 편안함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100년이 넘은 집, 나무로 지어져 맨 아래층 이웃이 문을 닫고 집을 나서는 소리도, 이를 닦다가 내는 기침 소리도 침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 마냥 선명하다. 층과 벽이 나뉘어 있지만 건물 안 모두가 한 집에 사는것과 마찬가지. 한국이라면 벌써 층간소음, 벽간소음으로 칼부림이 날 충분한 조건이다. 하암. 창가로 다가가 아침해를 잠시 바라보다 욕실로 향한다. 깔끔하지 않은 정신으로 얼굴에 대충 물을 끼얹는다. 칫솔을 입에 물고 거실로 나와 창 밖을 바라본다. 셀 수 없이 많은 5층여 높이의 건물들. 그 너머 멀리 시선을 달려본다. 뾰족한 첨탑의 끝이 작게 보인다. 이곳 집을 계약한 중요한 이유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에펠을 집 창가에서 볼 수 있다니! 처음 집을 구할땐 오버스럽게 환호성을 질렀다. 부동산 중개인은 저 조그만게 별거냐는듯 피식 웃었으나 내겐 중요했다.


외출 준비를 마치고 거리로 나선다. 원래도 아침밥은 먹지 않던 습관덕에 이곳에서도 대개 바게트 한조각과 드립 커피를 한잔 마시는 정도로 아침을 깨운다. 늘 가던 집 앞 공원 서편에 위치한 카페로 간다. Un cafe, s’il vous plait. 나보다 한뼘은 눈이 위에 있는 길쭉한 엘리엇은 오늘도 작은 웃음으로 맞이해준다. 일년여 익숙해진 얼굴이라 이젠 그와 아침인사를 하지 않으면 이곳에서의 일상이 허전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카페 앞 거리 한쪽 펼쳐진 테이블에 앉는다. 아침 길가엔 으레 아침을 깨우는 달리기에 한창인 러너들이 있다. 오늘도 역시 마찬가지. 하루를 쉬지 않는 부지런한 빠리지앵, 빠리지엔느들. 러너들의 나이키 운동화와 수백년 세월을 품고 있는 고풍스런 돌바닥이 함께 주홍빛 아침 햇살을 머금어 어쩐지 캔버스 속 한 폭 그림처럼 멋지게 어우러진다. 어젯밤 작은 비가 있었는지 지면엔 아직 얕은 수증기가 깔려있어 가만히 앉아있자니 아직 꿈 속인듯 몽롱하다. Le cafe est pret. Ji-an. 아! 땡큐! 아니, Merci! 테이블로 다가온 엘리엇이 커피와 바게트 한조각을 놓아준다. 얼빵한 얼굴로 헤헤 웃으며 인사하자 엘리엇도 눈웃음으로 답한다.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그와 나의 켜켜이 쌓인 일년의 유대감이 아침의 작은 인사 속에 담겨있다. 호록. 작게 커피를 마셔 입 안밖을 적신다. 한국에 비해 이곳 커피는 산미가 강하다. 아무래도 원산지가 가까워 대부분 커피숍은 완전히 태운 커피를 사용하지 않는다. 샹젤리제에 있는 스타벅스에 가지 않으면 대개는 신 커피를 마시게 된다. 산미 애호가인 나에겐 최고의 환경이다. 바게트는 금새 다 먹어버렸다. 그대로 일어나려다 내부 테이블 정리를 하던 엘리엇과 눈이 마주친다. 벌써 가려고? 눈으로 말을 건다. 눈웃음으로 화답하며 다시 앉아본다. 뭐, 급할건 없지. 조금 더 러너들을 바라보자. 좀 더 이 아침을 누려보자. 이곳은 유일한 나의 꿈, 나의 도시, 파리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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