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간엔 꿈을 얘기해 볼거에요. 꿈이 뭐에요? 옆자리에 앉은 창섭의 입에서 성급하게 질문이 나온다. 이미 꿈을 적어오라는 활동지를 받았던 터라 여전히 잘 모르지만 입을 꾹 닫고 아는척 조용히 있는다. 학교에서 꿈을 적어오랬어요, 꿈? 한국에선 검사 판사 의사지. 과학자도 괜찮겠다. 넷 중에 하고 싶은거 적어가. 네. 엄마. 꿈이란 뉴스나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일을 하는 것이구나. 별 생각없이 판사를 적어온터였다. 저는 발레리나가 될거에요. 이미 대회에서 수상도 했어요. 발레를 할 땐 공주가된 것 같기도 하고 너무 기분이 좋아요. 반에서 가장 인기있는 수진이가 대답한다. 우와. 탄성이 나온다. 으쓱하는 어깨와 뿌듯한 표정이 수진의 얼굴에 드리운다. 이미 지난 봄 학예회때 실력을 뽐낸적 있었던지라 당연한 대답이겠지 싶다. 어쩐지 내 차례가 걱정된다. 아랫배가 살살 아픈것 같아 도망치고 싶다. 왜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하지? 지안아. 얼른 뉴스에서 봤던 내용을 짜집기 해본다. 안아, 지안아. 네! 앗차.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래, 애가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하고있어? 지안이 꿈도 발표해볼까? 하필이면 수진이 뒤라니. 아이들의 시선이 몰린다. 수진의 대답으로 한껏 꿈이란 주제에 흥미가 오른 기대가 느껴진다. 넌 어떤 재밌는 얘길 들려줄건데? 얼굴이 발그레해짐이 온몸에 느껴진다. 아닌척 해보지만 이미 다 들통났겠지. 한숨 쉬며 잠시 주변을 살핀다. 평소 친구들에게 다정한 우빈이 근심인지 응원인지 모를 표정을 짓고 있다.
전 판사가 되고 싶습니다. 잘못한 사람들을 혼내주고 싶어요. 뭔 말을 하고 있는지 정작 내 귀엔 잘 들리지 않는 나의 말이 반에 퍼진다. 어쩐지 앞이 뿌옇게 흐려보인다. 짝짝짝짝짝, 끝났나? 우와! 기영이 목소리가 어렴풋 들리는걸 보니 끝났나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시선이 몰리는 곳에 홀로 서있으면 감각이 점점 마비되는 일. 역시 지안이는 대단해! 너 판사되면 내가 운전사 해줄께. 나쁜놈들이 오면 내가 다 막아줄거야! 나보다 한뼘은 더 큰 기영이 말을 걸어와 정신이 든다. 으응. 고마워. 주변에서 계속 우와 소리가 들린다. 뭔가 대단한 얘기를 지어낸것이 분명하다. 웅성거림이 쉽게 잦아들지 않는다.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숙인다. 아직 귀가 빨개있겠지? 고개를 숙였는데도 누군가 똑바로 쳐다보고 있음을 눈치챈다. 수진이다. 주인공자리를 뺏어서 기분이 나쁜건가? 이럴땐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이는 편이 낫다. 제발 날 그만좀 봐라. 얘들아 조용! 지안이 발표 잘 들었죠? 꿈은 이런거에요. 여러분도 지안이처럼 큰 꿈을 꿔야합니다. 알겠죠? 네! 다행이다. 다들 선생님을 보고 있으니 이제 괜찮겠지? 슬쩍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핀다. 쿵! 너무 놀라면 몸이 정지해버린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여전히 멈춰있는 수진의 시선과 마주친다. 걱정? 짜증? 교과서에서 배운적 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 얼른 시선을 피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잘 되지 않는다. 십초? 일분? 아니 십분? 지안아 뭐해! 얼른 나와! 포도 슬러시 사먹으러 가자! 기영의 외침에 퍼뜩 정신이 들어 으응 대충 대답하고 슬며시 자리를 정돈하려 일어선다. 아으, 왜 쟤는 집에 안가고 계속 쳐다보는거야? 얼른와! 응응 알겠어. 에라 모르겠다. 수진을 그대로 둔채 기영에게 달려간다. 수진과는 같은 반이지만 얘기 한번 나눠본적이 없다. 엄청난 인기를 가진 수진의 주변엔 언제나 아이들로 북적였다. 난 쉬는 시간에도 책을 손에서 떼지 않고 있다. 주로 전과를 외우고 가끔 여유가 생길땐 이문열 삼국지를 전과 외우듯 샅샅이 살핀다. 어차피 앞으로도 얘기나눌 일은 없겠지? 수진을 남겨둔채 나왔다는 작은 죄책감을 떨치고 기영과 운동장을 가로지른다. 교문을 나서기 전 슬쩍 교실 창가를 올려다본다. 다행히 수진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