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사용법

30년 일시불로 하실래요?

by Hache

<이민>

최근 한 달 정도 프랑스로의 단기 이민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였다. 이유는 별로 특별하지도 않게 현재의 삶, 직장에서의 일이 불만족스럽다는 데 있었다. 물론 불만족스러움을 피해 달아난 곳에 거대한 만족이 날 환영하며 기다리고 있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의 경험을 통해 체험한 바 있기에 신중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됐다.


방법을 찾아 나섰다. 프랑스에서의 삶을 수년째 이어가고 있는 작가 목수정 씨의 책을 다시 보았고, 워킹 홀리데이를 통해 1년간 직장을 구해 파리에서 일을 하고 있는 청년의 포스팅도 모두 보았다. 목수정 씨의 책을 볼 때는 그녀가 30의 나이에 처음 프랑스에서의 삶을 시작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나도 늦지 않았다!'라는 생각에 반짝이는 희망이 생겼고, 반면 워홀을 했던 청년의 글을 보면서는 '거기나 여기나 도긴개긴'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100%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에 음지에서 이끼를 덮고 누운 듯 한없는 좌절감을 느꼈다. 하지만 누구의 경험담을 읽은들 사실 내가 경험하게 될 현실은 그들과 다를 것이 자명하기에 타인의 글에 일희일비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보았다.


단기가 됐든 장기가 됐든지 간에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필요한 것은 돈과 직업, 이 두 가지로 함축됐다. 돈은 해오던 일을 꾸준히 하면 되는 것이므로 모으는 것에 큰 고민이 없지만 문제는 직업이었다. 과연 내가 프랑스에 가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질문할 것도 없이 현재 나에게 그럴 능력이 없다는 것은 자명했다. 30년 가까이 공부했다는 사람이 기껏 한국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날 능력도 안된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무척 한심하게 느껴졌다.


물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현재 돈을 안정적으로 벌 수 있는 상황을 충분히 활용해서 일정기간 정착비용을 마련하는 동시에 이 기간 동안 프랑스에서도 써먹을 수 있는 나의 직업을 만들 수 있다면 당장에 떠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2, 3년 사이에 가능할 일이었다. 만일 이것도 실패한 상황에는 벌어놓은 돈만으로 생활을 해결하며 3, 4년을 살다 돌아와 국내에서 다시 2, 3년간 돈을 번 후에 나가는 일을 반복하는, 대학 도서관에서 시험기간이면 종종 활용했던 소위 '메뚜기 전략'과 비슷한 생존 방식을 구사하면 될 일이었다.


<노예 30년>

프랑스에서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방법을 생각하다 보니 태어난 곳에 정착을 하기 위해 분투하는 우리네 삶이 참 별거 아니라고 생각됐다. 특히나 공무원의 삶은 더더욱 그러했다. 30년가량 한 나라에, 한 지역에 머물며 개미같이 일해 집 사고, 자식을 양육하고, 정년퇴임 후 노년의 30년가량을 연금 까먹기로 살아가는 삶, 이게 전부 인 게 한국인의 절반 이상이 그토록 바라는 삶이라니... 결국 한국인이 가장 바라는 삶은 늙은 30년을 일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기 위해 젊은 30년은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희생시킨다는 결론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30년을 희생해서 30년의 원하는 인생 보장받으려 한다면 굳이 젊은 30년을 한 번에 희생할 필요가 있을까?'

아니란것 알지만 벗어날 수 없다. 정규직 30년 - 출처: 네이버 영화 '노예 12년' 포토

한국인들이 너무도 쉽게 젊은 30년을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늙은 30년간 아무 일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됐다. 만일 늙은 30년 동안에도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계속해서 생산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다면 굳이 젊은 30년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직장의 노예로 한 번에 소모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예를 들자면 2년 일하고 2년 원하는 삶을 살고, 3년 일하고 1년 원하는 삶을 살고, 1년 일하고 3년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얘기인 것이었다. 젊은 30년과 늙은 30년을 구분 짓지 않고 자유롭게 분배하여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자유롭게 산다면 젊은 날의 우리의 삶이, 또 노년의 우리의 삶도 얼마든지 세상을 누비며 풍요롭고 생산적이고 건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디멘터>

정규직, 전 세계적인 청년 실업과 경기침체로 인해 황금 면류관으로 여겨지는 그 이름이 실제로는 우리의 반짝이는 젊은 영혼 30년 치를 눈 깜짝할 사이에 앗아가 버리고 이후에 영혼이 빠진 듯 흐리멍덩한 30년간의 노년만을 남기는, 영화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편에 나오는 영혼을 가져가는 간수 '디멘터'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젊은 30년을 빨아들이는 정규직이 디멘터가 아니고 무엇인가 - 출처: 네이버 영화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포토

정규직 30년이 흐리멍덩한, 능력 없는 노년을 생산하는 이유는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던 그 일이 실은 그저 30년짜리이며, 30년을 한다고 해도 이후에 활용 가능한 포괄적인 개인의 능력을 길러주지 못하고 그저 거대한 관료제를 굴러가게 하는 아주 조그만 부분만을 반복해서 담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우리가 늙은 30년 동안에도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디멘터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노예 30년을 지낼 필요도 없다.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야말로 '인생 정규직'이 아닐까 싶다.


<직장? 직업!>

철밥통 직장인으로서는 아무래도 채 5년 버티기가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철밥통의 특성은 한번 차 버리면 다시 굴러들어 오지 않는다는 점이 있다. 아깝게 생각되지만 아무래도 평생 현역이 될 수 있는, 어딜 가든, 원하는 시기에 일 할 수 있는 '내 직업'을 갖는게 나을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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