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자매

by Hache

언제부턴가 기록을 남길 때 제목을 입력하지 않고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이렇게 하면 좀 더 사고가 자유로워져 원하는 기억을 모두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몇 번의 기록을 남겨보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일관된 주제가 없으니 기록이 좀 더러워(?) 지는 문제가 보이지만 뭐, 상관없다. 나의 기록은 대 서사시나 장편 소설이 아니니깐.


2019년 하계에 상담 치료소를 옮긴 후 상담사님과 나눴던,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혼자 쏟아냈던, 프로이트적 관점에서 보자면 성인이 된 이후 모든 사고와 행동의 근원이 되는 기억에 있는 처음의 이야기들 때문인지, 아니면 생의 외통수에 걸린 것 마냥 이후의 스텝이 깜깜해 보이는 시기를 겪고 있기 때문인지 확실치 않지만, 요새 들어 유독 과거의 기억을 자주 탐색하게 된다.


처음의 기억은 소위, 너무 확실하고 거대하게 자리 잡힌 기억이라 제목까지 붙여준 '붕어빵을 떨어뜨렸습니다.' 일화이다. 스스로 그 연관성을 지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이후 나의 사고와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인지 모르지만 그것은 언제건 너무도 선명히 떠오르는 어린 시절 기억중 가장 뚜렷한 기억이다. 그날의 흐렸던 날씨, 동네 아이들과 뛰놀던 주택가의 사거리, 시장을 갔다가 돌아오시던 어머니, 아마 새하얀 태권도복을 입고 있었던 것 같다. 미취학, 혹은 초등학교 1, 2학년 중 하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어린아이들이 쉽게 그러하듯 집중이 흐리고 손도 작은 탓에 받아 든 붕어빵 봉투를 떨어뜨렸고 그것은 그대로 땅으로 떨어지며 거꾸로 쏟아졌다. 음.. 어머니는 화를 냈던 것 같다. 정확히는 나에 대해서라기 보단 당시 당신이 보내고 있는 생의 맥락에 대한 좌절이나 거친 힘듦이 가득 담겼던 것 같다. 어린 나이에 뭘 그런 포괄적인 상황적 이해를 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기억이란 늘 시간이 지난 후 되새겨지며 그 이유를 덧붙여나가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얘기해본다. 실제로 그 시점 이후에 어머니는 내 기억상으로 한 차례, 단 한 차례 '맥락 탈출'을 용기 있게 감행한 적이 있기에 아마도 '붕어빵 사건'의 상황에 대한 이해는 틀리지 않을 것이다. 아, 부연 설명을 하자면 여기서 '맥락 탈출'이란 '가출'을 의미한다. 어린 자식이 둘이 있는 집 어머니의 가출이란 어떤 의미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여하튼, 그 사건은 어렸던 나에게 두 가지를 명시적으로 알게 해 주었는데, 그 첫 번째는 '가난', 두 번째는 이후 내가 취해야 할 행동이었다. 어쩌면 그전부터 그랬었는지도 모르지만, 기억의 파편 속 시장에 따라다니던 나는 "떡볶이 먹을래?" 혹은 "장난감 사줄까?" 하는 어머니의 모든 질문에 "아니요, 괜찮아요"로 일관했다. 그리고 매번 새로운 무언가를 사달라고 하는 누나를 '철부지' 취급하며 이 사람이 집을 갉아먹고 있으니 나라도 마이너스가 되지 말아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유년기와 청소년기, 그리고 이후로도 꾸준히 '아니요, 괜찮아요'를 일관했다.


어쩐지 조금 억울한 기분이 드는 것은 결국 그리 욕심이 많고 본인이 원하는 것을 집안의 경제적 맥락 없이 다 요구하고 기저 끝까지 파내어 가져 간 누나는 조선시대 용어 그대로 나라의 '영관급'으로 성장했고 나는 마음이 빈곤한 평범한 직장인, 아니 한 차례 이미 실패를 경험했으니 부적응 사회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이 되었으니 어쩌면 나도 그냥 어린이답게 별생각 없이 욕구를 충족시키며, 많은 것들을 요구하며 성장했어야 했어야 결과론적으로 집에 더 보탬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안타깝긴 하지만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이다.


명절 대낮에 뜬금없이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되뇌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놈의 책, '도토리 자매' 때문이다. 고향, 남쪽나라에서 친구에게 빌려온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친구의 부연설명에 따르면 '요즘은 어려운 책이 읽히지 않아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려 산 책'은 어린 시절 비교적 드라마틱한 성장기를 보낸 '돈코'와 '구리코' 자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이 두 자매 이름의 결합이 소설의 제목 그대로 '도토리(돈구리)'라는 것을 금방 눈치챘을 것이다, 의 성인이 된 이후 유년의 기억을 양분 삼아 느리게 성장해 가는 이야기이다. 소설만큼 나의 유년이 드라마틱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공감이 되는 부분은 바로 이 '느리게 성장'해가는 성인이라는 점이다. 책을 빌려준 친구가 얘기해 준 적이 있다, '넌 아직도 사춘기인 것 같아'. 또, 어머니는 이렇게 표현하셨다, '넌 별을 쫓아가는 아이 같아'. 아버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넌 세상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편이야'라고 이야기하신다.


조금 더 젊었을 때는 이런 내 특성이 마음에 들었다. 이전에도 그랬고 이후로도 '난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온전히 나의 손 끝으로 모두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고 이것이 일정 나이까지는 어느 정도 잘 먹혀 들어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사람을 쉽게 지치게 하는 힘이 있고 사회는 아버지 말씀 그대로 만만치 않은, 현재의 심정으론 절대 넘을 수 없는 '통곡의 벽' 같은 곳이라 이런 나조차도 좌절하게 만든 곳이다. 지금은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무언가 해야 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뭔가 머릿속에 맴돌기는 하는데, 손 끝으로, 행동으로 펼쳐지지 않고 있는 현재의 방향을 어떻게 해야 수정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단 산책을 좀 하는 편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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