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삶의 권태로움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조그만 새로움을 찾아 권태에 삶이 뒤덮이지 않도록 하는 일의 반복인 것 같다. 주말 내내 날씨가 흐리더니 월요일 출근길도 어김없이 흐림이다.
월요일 아침, 출근 준비를 할 때마다 ‘당최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와 같은 류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반복하게 된다. 목적이 상실된, 아니 어떤 목표를 가져도 삶의 본질적 속성이 생존 그 이상이 아님을 싫지만 깨달아버린 시간 속을 살며, 아무렇지도 않으려면 사람이든 동물이든 조그마한 것을 지키고 키워가는 행위가 삶을 이어가는데 가장 확실하고 눈에 뜨이는 목표가 되어 효율적으로 무력과 권태를 없애준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물론 나에게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깨우침이 삶에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왜 인류의 과반수 이상은 번식을 하는가’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답을 찾은 듯하다. 별 의심 없이 사회가 굴러왔던 대로 앞 세대의 행위를 답습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인 것이다. 물리학으로 생각해보자면 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에너지 손실이 없으니, 뭐 당연한 일인가?
아침마다 알람 소리에 눈을 뜸과 동시에 별 특별할 것 없는 퇴근 후를 생각하는 것은 자못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