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전제조건

먼저 들어주는 마음

by 자유 창조

나는 매일 아침, 저녁 두 차례 어머니께 문안 전화를 드린다. 통화의 마무리는 늘 '사랑한다'는 말이다. 갑자기 '사랑'의 어원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몇 가지 설이 있다. 불교 용어인 사량(思量)에서 나왔다. '사람'과 같은 어원이다. '살다, 삶, 사람, 사랑'이 같은 어원이라는 등 다양한 설이 있다. 아직 정확한 어원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사라진 고어 ‘괴다(알아주는 사랑), 닷다(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사랑)’와 표현도 사랑과 같은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인간에게 '사랑'은 오랜 시간 삶의 중요한 가치임에는 틀림없다.

실제로 사랑은 이성 간의 사랑,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등 참 많이도 쓰이는 단어다. 그럼 사랑을 난 어떻게 실천해야 할까? 누구나 사랑을 실천하며 산다고 자부한다. '정말 사랑해', '나도 사랑해', '내 목숨 바쳐 영원히 사랑해' 등 사랑을 표현하는 말들은 참 많다. 그리고 사랑은 말로 표현해야지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도 한다. 말도 해야 하고 때론 선물도 해야 하고 어려운 이웃에게는 내 도움도 주어야 한다. 참으로 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이 힘들다고 하는 건가?

사랑의 전제조건은 뭘까? 또다시 의문이 생겼다. 많은 철학자들이 저서에서 나름대로 정의를 내렸다. 하지만 내 식견으로는 너무 어렵다. 그러다가 어제 낮에 아들 책장을 정리하다 어린 시절 읽었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동화책 제목을 발견했다. 바로 이거다. 머릿속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화병이 난 갓쟁이가 집 근처 대나무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마음껏 소리를 지르니 화병이 나았다는 부분]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연결이 되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던 것,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것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도록 가만히 들어주는 대나무 숲과 같은 존재, 이것이 바로 '사랑'의 전제조건이 아닐까?

가족 간에도 내 말은 들어주지도 않고 일방적인 조언만 해댄다면 솔직히 짜증 나지 않는가? 본인 고민은 매번 털어놓으면서 내 고민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들어주지 않는 친구가 있다면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자연스레 멀어진다. 어려운 이웃에 대한 사랑도 결국 어려움을 먼저 들어봐야 공감하고 도와줄 수 있지 않는가?

공자와 같은 성인도 예순이 되어야 비로소 이순(耳順)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평균 수명을 고려하면 죽을 나이 정도는 되어야 귀가 순해진다는 것이다. 남의 말을 곡해하지 않고 잘 들어주는 것은 성인에게도 그만큼 힘든 일이었던 것이다. 먼저 말을 들어주는 마음, 그 자체가 바로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난 말을 많이 하는가? 아니면 먼저 들어주는가? 아직 난 부족하다. 말을 줄이고 들어야겠다. 성인(聖人)의 성(聖) 자가 왜 귀가 먼저 있고 입이 뒤에 왔는지 깨닫게 되었다. 스님들의 묵언수행(默言修行)이 왜 필요했는지, 신부님들이 고해성사에서 왜 먼저 타인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는지 이해가 된 하루다.

잊지 마세요. 당신의 오늘도 향기로울 거예요.

Go together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말이 가진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