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공포 극복을 곁들인.
새벽 5시 15분.
명랑하고 산뜻한 알람이 매주 월-금요일마다 울리면 나는 즉각 눈을 뜨고 매트리스 위를 뒹굴며 기지개를 켠다. 어떤 날은 5시나 4시 50분쯤 저절로 눈이 떠지는 날도 있지만 아무튼 알람은 5시 15분으로 고정되어 있다.
일주일 전쯤만 해도 밖은 캄캄했는데 요즘은 주변 사물이 뚜렷하게 보일 정도로 밖이 밝아졌다. 날씨도 꽤나 풀려서 옷차림도 한결 가볍게 움직일 수 있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롱패딩을 입고 모자도 단단히 쓰고 '춥다, 춥다.'를 연신 외치며 수영을 다닌 게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참 빠르다.
내가 수영을 처음 배운 건 2014년, 혹은 2015년이었다. 한 9, 10년 전쯤 서울 상도동에서 살 적에 물에 대한 공포도 이겨내고 수영도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동작구민체육센터에 찾아가 새벽수영강습을 등록한 게 첫 시작이었다. 상도동으로 전입하기 전 파주에서 근무할 때 회사 선생님들이 수영을 가르쳐 주었는데 그땐 물이 어찌나 무섭던지. 귀에 물이 들어가는 것도 공포였다. 아주 어렸을 적에 중이염으로 크게 고생하고 수술한 전력이 있어 수영은 물론이고 물장난도 일절 하지 않던 나였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몸을 물에 담그는 상황이 되었고 파주에서 수영 배울 적은, 수영을 배웠다기보다... 물 안에서 허우적거렸다고 해야 맞겠다.
파주에서 근무하던 시절, 회사에서 나를 포함한 4명의 직원들을 인도네시아로 출장을 보냈다. 내 기억이 왜곡된 게 아니라면 선발대 둘은 한 달 반, 후발대 둘은 한 달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서 먹고 자며 일을 했다. 중국의 엄청나게 큰 대안학교의 한국부 학생들(학교 이름은 생각이 나질 않는다.)의 여름방학 동안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학생의 절반은 인도네시아에서부터 세계일주를 돌고 나머지 학생들은 수영으로 토바호수 10km 횡단을 진행했다. 그때 만난 토바호수는 제법 깊고 규모가 컸으며 바람에 밀려 넘어오는 파도는 때로 바다의 파도와 흡사했다. 우리가 머물던 숙소는 호수를 바로 앞에 두고 약 10여 채 가까이 줄지어 있었는데 호수와 숙소 사이에 망고 나무가 많아서 바람이 많이 불면 떨어진 작은 망고를 주워 먹기도 했다.
그 당시 나는 물을 여전히 두려워했기 때문에 수영횡단 프로그램 외에 다른 프로그램들을 맡아 진행하며 지냈는데 어느 날, 함께 출장을 갔던 다른 선생님들이 일단 물에 빠지면 수영을 하게 돼있다며 나를 무작정 토바 호수로 밀어 넣었다. 저항하고 도망갈 여력 없이 그대로 물에 빠졌고 몇 초간(몇 초간이었겠지만 몇 분처럼 길게 느껴졌던 기억) 입 안으로 들어오는 물을 연거푸 먹으며 허우적거렸고 겨우 뜬 눈에 비친 물 밖의 선생님들은 그저 나를 구경만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물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걸 확인했는지 누군가 수영 횡단을 위해 학생들이 사용하던 튜브를 던져주었고 그걸 잡고 겨우 나는 물 밖을 나왔던 적이 있다. 그 후 그 사건을 계기로 공포를 이겨내고 싶어서 수영을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고민의 시간은 길었지만 막상 등록하고 나서는 무덤덤했다. '토바 호수는 발이 안 닿았지만 수영장은 발이 닿잖아. 빠져 죽을 일은 없을 거야.' 생각하면서.
낯선 수영장 냄새와 샤워실, 다양한 수영복과 수모, 수경을 쓴 사람들. '다리를 쭉 펴고 허벅지에 힘주세요.' 강사님 말 듣고 왕초보 레인에서 걸터앉아 힘차게 다리를 휘젓던 어색하고 민망하고 힘들었던 시간을 꾸준히 보내고 물에 동동 뜨는 재미, 동동 뜬 채로 발차기를 하니 앞으로 나가는 재미, 발차기하며 앞으로 나갈 때 쭉쭉 팔을 돌리니 더 잘 나가는 재미를 하나씩 느끼다 보니 어느 날 배영을 하고 있고, 평영을 하고 있고, 접영도 하게 되었다. 그렇게 1년을 꾸준히 빠짐없이 수영에 푹 빠져 지냈고 내 최애 운동은 수영이 되었지만 여차저차 몇 년간 수영을 안 하다가 작년 8월부터 자유수영을 슬금슬금 나갔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루틴을 짜서 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하다 보니 또 새롭게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12월부터 새벽 첫 강습을 등록했고 지금까지 강습 출석률은 100%! 출장이 있어도 수영은 빠질 수 없다. 여행 중에도 가능하다면 주변 수영장을 찾아서 아침 수영은 꼭 해야만 한다. 푸하하.
물을 극도로 두려워하던 내가 다이빙 수업을 가장 즐겨하고 강습이 끝나도 바로 샤워하기 아쉬워 몇 바퀴를 더 뱅뱅 도는 수영 예찬론자가 될 줄이야. 성취감은 말할 것도 없고 어느 짤에서 본 것처럼 수영 못 간 날은 나약한 아우라를 풍기지만 강습 가서 운동량 꽉 채운 날은 오히려 힘이 더 팔팔 나는 마법!
아, 수영! 정말 수영만큼 좋은 운동은 세상에 없는 것 같다. 때때로 따개비가 되지만 결국엔 힘찬 상어로 거듭날 거야. 사랑해, 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