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는 어울리면서 회식 자리도 가고 해야 돼. 그래야 인맥도 생기고 그게 도움이 되고 그러는기라."
몇 달 전 수영 강습반 회식 이야기가 나오면서 들은 말이다. 회식 날짜 투표를 해달라는 말에 못 들은 척 슬쩍 풀장을 나왔는데 라커룸에서도 회식 얘기가 나왔다.
회식이 없어서 지금 일 하는 곳이 참 좋다는 내 얘기에 어떤 회원님은 회식 자리를 가야 한다고, 그래야 인맥도 생기고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거라고 이런 시골에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지만 말이 길어지는 게 싫어서 으응~ 그렇구나~ 하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사는 게 맞는 거야 라는 그 회원님의 말은 본인들 스스로 그렇게 살아야만 하게끔 만들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제껏 조직문화에서 회식의 주된 기능은 서로 어울린다는 명분 아래 개인적 인맥을 만들고 그 라인에 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된 경우가 많다. 게다가 상대방이 원치 않아도 상사가 주면 무조건 받고 마셔야 하는 폭력도 발생한다. 내 개인적인 경우, 첫 직장에서 술을 잘 마시게 생겼다는 선배의 말 때문에 몸에 받지도 않는(그 당시 주량 소주 3잔) 술을 억지로 마시고 잠들어 버리는 바람에 그 후로는 내게 술을 권하지 않았다. 이처럼 한국의 회식 문화는 직간접적으로 무리 안에 속하지 않고 어울리지 않으면 문제가 있다는 상황을 내포하고 있고 한국 내의 조직 문화가 권력화 되어 있음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몇 해전 코로나 발생을 기점으로 이러한 회식 문화가 많이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옛 회식문화를 지향하는 이들은 존재한다.
여기서 나는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이렇게 회식문화에서도 볼 수 있듯, 왜 우리는 무리로 어울려야 정상이고 안정적 범주에 들어서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예전에 인스타그램에서 어른들이 결혼하라는 잔소리를 하는 이유에 대한 내용이 캡처된 피드를 본 적이 있는데,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결혼한 본인들이 맞다고(결혼을 옳고 그름의 문제로 생각) 생각하기 때문에 그 안정감을 유지하기 위해 주장하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사람은 본인이 한 것, 혹은 해온 것을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해야 본인이 잘 살고 있고 옳게 살고 있다고 여기는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서 무척 일리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 내가 행동한 무언가, 내가 생각하는 무언가를 타인에게 주장하고 그와 같이 행동하는 상대방을 보며 느끼는 안정감이 원동력이 된다는 것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유튜브 채널 <지식인사이드-지식인 초대석>에 출연한 유시민 작가는 혼자 있는 사람들을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이유로 일종의 본능의 발현이라고 말한다. 쉽게 말해서 "내가 저렇게 되면 안 돼."라는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종은 집단생활을 하는 종이다. 이는 어느 규모로 집단을 만들고, 어떤 질서를 내부에서 만들고,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느냐에 대한 부분이 시대에 따라 여러 양상으로 변화해 온 것을 뜻하는데 이러한 생물학적 유전자들이 진사회성 동물(번식 역할이 나뉘고 여러 세대가 협력하며 함께 새끼를 기르는 동물)인 인간의 행동을 무의식 중에 지배하고 있으며 그중 하나가 고립되면 죽는다고 여기는 것이다. 속한 집단에서 쫓겨나면(소속되지 않으면) 죽는다는 두려움이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어서 고립과 따돌림에 대한 공포가 인간에게 있고 누군가 그런 상황에 놓인 걸 보면 자신은 그렇게 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투영하게 되면서 무리 생활에 어울리지 않으면 그것은 곧 비정상적 범위로 분류하게 된다는 의견인데 생물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무척 일리 있는 말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한국뿐만 아니라) 각 개인으로 존재함을 인정하고 존중함으로 서로 어울리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한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바뀔 수 없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생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렇게 각 개인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고 그런 사람들이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수영 강습반 회식이 이슈일 때도 회식 안 간다는 의견이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겨지는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싶고(물론 회식 가는 사람들도 존중) 혼자 먹는 식사가 그럴 수 있다고 여겨지는, 모두 다 카페 가자고 할 때 저는 쉴게요라고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그런 문화 속에서 살고 싶다.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