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할머니가 입원을 했다. 오른쪽 무릎 연골이 다 닳아서 움직일 때마다 뼈가 갈려 그 영향으로 피가 계속 나고 고여서 선택의 여지없이 인공관절 수술을 하셨다. 수술은 잘 됐지만 피가 잘 멈추지 않아 한 차례 더 고생을 하셨고 심지어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손을 헛디뎌 넘어지는 바람에 머리를 부딪혀 고생을 갑절로 하셨다. 인공관절 수술만으로도 가족 모두가 고생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엎친데 덮치기까지 했으니, 내가 파악한 할머니의 성향상 울적한 마음에 본인 탓을 많이 하고 있을 것 같아서(어느 환자나 그런 생각 할 가능성이 높겠지만) "할머니 얼굴 보고 내가 마음 충전하려고 왔지~"하고선 퇴근 후 거의 매일 면회를 갔다. 할머니는 아니나 다를까 본인이 지은 죄가 많은지 자식들 고생시킨다는 말을 했고 나는 그런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게 더 자식들 고생시키는 거라고(필자는 감정적 판단보다 이성적 판단이 좀 더 높은 성향이고 MBTI를 신뢰하진 않지만 굳이 말하자면 T 성향이 더 높은 편) 미안하다는 말보다 마음 써주고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게 훨씬 더 좋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한 달을 면회 가서 과일이며 먹을거리를 싸다가 할머니 입에 넣어주고 할머니 생각과 마음을 환기시킬 수 있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얼굴과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는 할머니를 보며 나도 좋은 에너지를 받았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다행히 피도 잘 멈추고 보행도 잘하고 검사 결과도 좋아서 마침내 할머니는 어제 퇴원을 하셨다.
어제 당직 근무 때문에 출근이 늦어 오전에 시간이 있었던 나는 할머니집을 청소하고 미역국을 끓이고 버섯 전을 부쳐 점심시간 즈음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와 아빠를 맞았다. 현관으로 들어오는 할머니를 기쁘게 맞이하면서 우렁차게 퇴원 축하해하고 외쳤다. 할머니도 홀가분한 표정으로 집에 들어왔고 당신 대신 집안 살림을 어느 정도 도맡아 온 나에게 "언제 철들까 했는데 야무치게 잘했네~"하고 칭찬을 하셨다. 평소 식사도 조금만 드시는 할머니는 미역국 한가득 밥을 말아 밥알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다 드셨다. "할머니는 나 같은 손녀 있어서 좋겠다." 하는 우스갯소리와 함께 하루를 잘 보내고 오늘 아침을 챙겨 드리러 할머니집을 갔는데 침대에 누워있는 할머니 눈가가 촉촉해서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보니 "응. 무슨 일 있다."라고 말을 하시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늦은 저녁 화장실을 가려다 손을 또 헛디뎌 엉덩방아를 크게 찧었는데 허리에 크게 충격이 있어 아프다고 하셨다. 그 아픈 와중에 또 노인용 기저귀를 깔아서 쓰고 잠을 뒤척여 새벽 내내 고생을 하신 것이다. 할머니는 또 자식들 고생만 시킨다고 자신을 탓하며 목소리가 높아졌다. 나는 그 말이 더 고생시키는 거라고 또 얘기했다. 다친 건 다친 거니 그건 어쩔 수 없고 조심해서 잘 나을 생각을 하라고 말했다. 너무 딱딱하게 말했으려나 싶어 할머니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다행히 뼈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붓기도 없고 보행도 가능했다. 그래도 움직이지 말고, 화장실도 가지 말고 기저귀 꼭 쓰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지난 병실 생활로 인해 엉덩이에 욕창이 조금 생겨 그 불편함 때문에 기저귀 쓰는 게 불편하시다고 하셨다. 욕창 부위에 약을 발라드리고 기저귀를 버리면서 내가 챙겨 드리고 기저귀도 갈아 드릴 테니 신경 쓰지 말고 사용하시라고 이런저런 당부를 하며 할머니를 안심시켰다. 할머니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다가 내가 한 말을 떠올리고는 "고맙다, 우리 딸~"하고 말하셨다.
할머니가 입원하는 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아빠나 고모들, 주변 지인들이 내가 고생이 참 많다고 얘기를 한다.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이게 고생인가 싶다.(피로감이 조금 느껴지는 날이 있지만 할머니를 살피는 것 자체가 고생스럽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그리고 동시에 누군가에게 내 에너지와 시간을 쏟는 걸 딱히 선호하지 않는 내가 어떻게 이렇게 할머니를 살피고 있는 건지 스스로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성향상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고 선을 잘 긋는 타입이고, 가족이 최우선 순위이기보다 (그게 누구든) 자신 스스로를 우선으로 돌보아야 주변도 살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가족을 무조건적으로 1순위로 생각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그렇기에 내가 할머니를 살피고 돌보는 건 어떤 원동력에서 나오는 걸까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에 대한 답은 할머니가 나를 키우고, 내게 해주셨던 것들이 내 무의식 속에, 또 기억 속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나를 키우실 때 매 계절마다 나오는 제철 과일과 재료를 사다가 먹였고, 어린 시절 내가 쓴 기저귀를 일일이 갈고, 스스로 옷을 입기 전까지 입히고 벗기고 씻겨주었고, 아플 때 병원을 데리고 다니며 약을 꼬박 먹였다. 할머니는 내가 할머니 기저귀를 갈아주고, 과일을 먹이고, 음식을 만들고, 밥을 차려주고, 할머니 약을 챙겨주는 게 미안한 일로 여기지만 사실 당신이 내게 그와 같이 사랑으로 헌신한 것을 내가 분명히 알기에 나 또한 그와 같이 그녀를 돌보는 것이 당연하여 고생으로 느끼지 않는가 싶다. 요즘은 헌신과 사랑이 동일한 것이다 느껴진다. 혹은 분리될 수 없고 딱 붙어 다니는 것이다 싶다.